함북 경성 출신인 고인은 1930년 2월 배재중 3학년 때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학생 200여명을 규합해 ‘일본 제국주의 타도’ 등이 적힌 깃발과 태극기를 흔들며 항일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서울 마포구 도화동 빈민촌에서 빈민아동의 교육에 헌신하다 1936년 스승 김교신의 권유로 일본에 유학해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제자인 쓰카모토 도라지(塚本虎二) 등으로부터 10년간 성경과 무교회 신앙을 배웠다. 1945년 귀국한 고인은 1946년 월간 ‘성서연구’를 창간해 종간호인 1999년 12월 500호까지 꾸준히 간행하며 김교신 함석헌의 뒤를 이어 무교회주의 신앙운동을 이끌었다.
고인은 독재정권 시절 ‘성서연구’의 권두문에 정권에 대한 직설적 비판을 실은 일로 유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베트남 파병에 대해 “국민의 생명을 돈과 바꾸려는 처참한 생각”이라고 노골적으로 질타하기도 했다. 고인은 1995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10시이며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제2묘역에 안장된다. 02-760-2028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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