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보니 토목전문가들 중에는 “도심 속의 공사라는 점이 다소 부담스러울 뿐 고난도의 토목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쉬운 공사”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공사 제3공구(청계8가∼고산자로 네거리) 현장소장인 현대건설 손문영(孫文榮·51) 상무는 이 같은 말에 손사래를 친다. 손 소장이 30년 가까이 말레이시아 페낭교, 시베리아 벌목, 성수대교 복구, 경의선과 동해선 복원 등 국내외의 대형 토목공사를 경험한 전문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엄살이 아닌 것 같다.
“청계고가도로를 놓았던 제가 그걸 철거하고 복원하는 공사 아닙니까. 추수하는 농부의 심정이에요. 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그 엄청난 관심도를 생각하면 밤에 잠도 안 와요.”
손 소장과 청계천의 인연은 1994년 맺어졌다. 당시 남산∼청계4가 구간의 청계고가도로 상판을 걷어내고 다시 가설하는 공사를 그가 맡았던 것. 교통통제 없이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돌조각 하나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설치했고 소음과 먼지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이 때의 경험 덕일까. 현재 손 소장이 맡은 3공구는 다른 공구에 비해 공사 진척도가 가장 빠르다.
그가 거쳐 온 국내외 공사들에서는 그 시절 그 사회의 정치사회적 단면들이 눈에 띈다. 82년 공사에 참여했던 말레이시아 페낭교는 아시아에서 가장 긴 13.5km의 다리로 말레이반도 북서쪽 인도양의 페낭 섬을 육지와 연결하는 것이었다. 이 다리 건설의 배경에는 싱가포르 독립 이후 페낭 섬에서도 계속 독립 여론이 일자 말레이시아 정부가 페낭 섬과 본토의 거리감을 줄여 그 같은 여론을 잠재우려 한 의도가 있었다.
손 소장은 또 질 좋은 목재를 저렴하게 국내에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90년 시베리아 벌목사업을 2년 동안 진행하면서 대북사업에도 눈을 떴다.
“수림지역을 찾아 벌목한 뒤 묘목을 심어 복원해주고 최단거리의 수송로를 확보하는 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 때의 경험이 경의선과 동해선 복원공사를 자청해 맡게 된 이유가 됐죠.”
그는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한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해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우니 러시아 중국을 앞세워야 하고 이 두 나라와는 경제를 통해 친밀감을 높여야 한다. 따라서 당장의 수익은 없어도 장기적인 대북 사업을 위해 시베리아 벌목을 택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진출을 경계하는 일본 업계의 견제가 거셌고 연방이 무너져 가던 러시아는 애초 약속과 달리 관세를 매기는 등 사업성이 악화돼 결국 사업은 중도 포기되고 말았다.
이뿐인가. 2000년 시작된 경의선 복원공사를 맡자 속초에서 전화가 잇따랐다. 언제 경의선을 타고 고향에 갈 수 있는지 묻는 전화, 장하고 대견하다는 격려전화에서 ‘나 좀 먼저 태우고 가라’는 성급한 전화까지 이어졌다. 경의선 복원 공사가 끝나갈 무렵 곧바로 강원도 동해북부선 공사 현장을 맡았다.
청계천 현장공사를 맡기 직전 손 소장은 현대건설 본사에서 경인지역 토목공사 전체를 관리하는 임원이었다. 이런 직위의 임원이 현장에 파견되는 것은 거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만큼 그 자신은 물론이고 이 공사에 임하는 회사측의 각오가 남달랐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막상 청계천 복원공사에 대한 반론은 지금도 만만치 않다. 600년 역사 유적인 청계천을 단순히 ‘하천 공원’으로 바꾸는데 불과한 것이 아니냐, 그 동안 현대가 해 온 것과 같이 또 한번의 밀어붙이기식 공사가 아니냐는 등의 지적이 그것이다. 또 전 구간에 대한 문화재 발굴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거나 설계단계부터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복원의 방향을 정했어야 했다는 주장도 여전히 살아 있다. 도심 속 주요 간선도로 역할을 했던 청계고가도로의 철거에 따른 교통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현실론도 있다.
그러나 손 소장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문화재 시굴조사가 진행되지 않은 곳은 현재 공사를 하지 않고 있으며 교통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전문기관의 용역은 별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문화재 시굴조사와 교통 대책이 나오면 완벽한 청계천 복원의 밑그림이 그려지는 거죠.”
정릉천과 성북천이 만나는 청계천 공사현장에서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손 소장은 갑자기 어두컴컴한 하천에 손전등을 비추었다.
“여기에 물고기가 사는 줄 몰랐죠. 청계천 복원공사는 ‘밀어붙이기’라는 표현보다 자연을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로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 이 물속에 물고기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 물고기를 이제 시민 품으로 돌려줘야죠. 청계천도, 우리 경제도 분명 그렇게 다시 살아날 겁니다.”
그의 손전등 불빛이 닿은 물속을 유심히 살펴보니 정말 물고기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