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로 지샌 8개월=이달 초 L호텔 노조원 200여명이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부당노동행위 근절 및 인사권 남용 분쇄 결의대회’를 열었다. 올해 정기 승진인사 문제로 갈등이 심해져 지난달 파업에 돌입한 노조가 회사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정부청사 앞에서 집회를 가진 것.
각종 민원성 시위가 잇따르자 올 7월 말에는 정부과천청사 인근 주민들이 시위대의 확성기 사용을 막아달라는 ‘시위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올 5월에는 충남 아산시 주민 4000여명이 아산시에 들어설 경부고속철도 역사(驛舍) 이름을 ‘천안아산역’에서 ‘아산역’으로 변경해달라며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같은 민원성 시위 외에도 인공기나 성조기 불태우기 등 진보 보수단체의 실력대결, 화물연대 등의 도로점거 시위,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폭행 등 각종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8월까지의 집회 시위가 784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나 증가했으며 이 중 민원성 시위는 6127건으로 역시 지난해에 비해 16% 늘었다.
▽북적대는 민원창구=최근 C건설사 대표 정모씨는 각종 민원창구에 “못 받은 공사대금 6억원을 받게 해달라”는 민원을 접수했다.
정씨는 “형사처벌 절차를 밟기 전 민원을 먼저 접수하라고 권하는 동료 기업인들이 많았다”며 “최대한 압력을 넣어 상대편에게 ‘우리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민원이 줄을 잇고 있다. 내용도 ‘전기요금이 많이 나왔다’ ‘주변 공사장 소리가 시끄럽다’ ‘사고를 당했는데 보험금을 안 준다’는 등 ‘자잘한’ 민원이 많다.
올 8월까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접수된 민원은 1만2241건. 지난해 같은 기간의 1만728건보다 14% 이상 늘어났으며 1998년 이후로는 최고 수치다. 민원 접수 건수는 1999년 이후 완만하게 늘어나다 지난해 처음 감소했으나 올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원인과 대책=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 교수는 “사회 구성원들의 불만이 늘어났고 또 그 불만을 ‘강도 높은 자기주장’으로 해결하려는 ‘실력행사 제일주의’가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 교수는 “민원과 시위의 증가는 한국사회의 긴장 수위가 높아지며 그 긴장의 해결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갈등을 조절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현 정부는 이런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효선 교수는 “불법 파업과 불법 집회에 대해 정부가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국민들이 ‘요구를 크게 하면 먹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정부가 명확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만 불필요한 민원이나 시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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