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시즌 맞은 서울 달력 제작업체

  • 입력 2003년 9월 19일 18시 42분


추석이 지나면서 2004년 달력이 나오기 시작했다. 18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일문화 인쇄공장에서 직원들이 내년 달력을 제작하느라 여념이 없다. -권주훈기자
추석이 지나면서 2004년 달력이 나오기 시작했다. 18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일문화 인쇄공장에서 직원들이 내년 달력을 제작하느라 여념이 없다. -권주훈기자
18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달력 전문제작업체 한일문화의 인쇄공장.

대형 인쇄기에서 내년 달력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직원들은 달력의 낱장 하단에 기업체의 로고를 인쇄하고 제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인쇄한 내년 달력은 약 100만부. 앞으로 한두 달 사이에 그 이상의 달력을 더 제작해야 한다.

달력 시즌이다. 달력 전문판매업소 40여곳이 밀집한 서울 중구 충무로엔 이미 1000여종의 내년 달력이 등장했다. 미리 만들어 선보이는 기성품 달력은 제작이 거의 끝났고 요즘엔 대기업 등에서 주문한 달력을 만들기 위해 막바지 디자인 작업이 한창이다.

18일 오후 충무로의 달력 판매업소인 성일캘린더. ‘한국의 사계’ ‘금강산과 백두산’ ‘한국의 야생화’ ‘청도 소싸움’ ‘추사 김정희 유묵’ ‘애완동물’ ‘전원주택’ ‘세계 호화여객선’ ‘세계문화유산’ 등 수백 종의 내년 달력이 벽에 가득했다.

최근의 골프 인기를 반영하듯 ‘세계의 골프’ ‘아름다운 골프장’ 등도 눈에 들어왔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을 때는 금강산 사진 달력이 잘 나갔다고 한다.

변함없이 인기를 누리는 것은 풍경사진 달력. 이곳 관계자는 “무난하고 싫증이 나지 않기 때문에 풍경 달력이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성 누드사진 달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것들은 남성 근로자가 다수인 공장이나 오랫동안 선상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은 해운회사 쪽에서 선호한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의 캘린더팀은 주로 국내 유명화가의 그림으로 주문달력을 만든다. 가장 인기 있는 화가는 작고한 김환기 장욱진씨와 원로 이대원씨 등.

오상현 대리는 “달력은 희망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밝은 분위기의 그림을 선호한다”면서 “화랑가나 경매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박수근씨 작품은 분위기가 좀 가라앉아 있어 달력에 쓰기엔 좀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달력 전문제작업체는 10여곳. 이곳에서 만드는 달력은 매년 2000여만부로 한해 국내 달력 판매량(3500만부 이상)의 절반이 넘는다. 요즘이 가장 바쁘긴 하지만 사실 전문제작업체는 해가 시작되자마자 다음해 달력을 꾸준하게 만든다.

올여름엔 주5일제와 관련해 식목일 어린이날이 ‘빨간날(휴일)’에서 제외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맘고생을 많이 했다. 일단 내년엔 바뀌지 않아 다행이지만 빨간날로 표시해 미리 만들어 놓은 달력이 자칫하면 무용지물이 될 뻔했다.

30여년간 달력을 만들어 온 한일문화 김진만 대표(66)가 말하는 달력 제작의 애환과 매력.

“1년 내내 달력을 만드는데도 1년에 한 번밖에 수금을 할 수 없어 좀 아쉽죠. 요즘엔 인쇄 달력도 많이 늘고 전자수첩이나 휴대전화에도 달력이 있어 달력의 희소성이 떨어진 것도 그렇고…. 그래도 달력을 보고 희망을 꿈꿀 수 있으니 그보다 더한 매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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