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평의 벼논이 엉망이 된 마산시 진전면 조정규씨(72)는 이날 “13일부터 매일 벼를 일으켜 세우고 있으나 겨우 500평 정도를 마쳤다”며 “일부는 썩어버려 올 농사는 망쳤다”고 하소연했다.
19일 경남도에 따르면 도내 전체 9만5600ha의 논 가운데 이번 태풍으로 1만6000ha가 쓰러지거나 물에 잠겼으며, 이날 현재 벼 세우기를 완료한 논은 2400ha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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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생림면 김이랑(62)씨는 “1500평의 벼가 바닥에 누운 데다 작물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까지 망가져 어느 것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 태풍에 섬 전체가 큰 타격을 본 경남 진해의 작은 섬 연도는 턱없이 부족한 복구인력에다 장비부족, 물 부족, 단전 등으로 4중고를 겪고 있다.
85가구 135명이 살고 있는 이 섬은 전체 가구의 60%가 피해를 당했고 생계를 이어갈 선박도 거의 파손되거나 파도에 휩쓸려갔다.
연도 통장 강경용씨(53)는 “해군장병 30여명이 돕고 있지만 인력과 생필품이 턱없이 모자란다”며 “마을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고 낙담했다.
전체 1200여 가구 중 절반에 가까운 520여 가구 15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부산 강서구 가덕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집 100여 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120여 채는 벽이 무너지고 지붕이 날아가 버렸으나 16일부터 겨우 전기가 들어오고 여객선 운항이 재개됐을 뿐 본격적인 복구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440억원대의 태풍 피해가 발생한 부산 강서구 송정동 녹산국가산업단지에는 19일 공단 입구부터 업체에서 내다버린 쓰레기 더미가 곳곳에 쌓여 있지만 언제 치울지 기약하기 어렵다.
식기류 생산업체인 ㈜문화크리스탈 직원 18명도 태풍에 파손된 제품을 정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자칫 태풍 피해의 여파로 공장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여있다.
이 회사 손관호 사장(53)은 “지난해 9월 어렵게 공장을 짓고 입주를 했는데 이번에 큰 피해를 당해 정신이 없다”며 “지원 융자를 받더라도 이자 감당이 어려워 공장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며 탄식했다.
부산항의 주요 항로에 설치돼 있던 등대 등 항로표지시설도 89기 가운데 39기가 파손돼 복구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 특히 부산항 입구에 있는 일부 등대는 유실되거나 파손 정도가 심해 내년 6월에야 완전 복구될 것으로 보여 선박의 안전항해에도 지장을 줄 것으로 보인다.경남도 관계자는 “민관군과 자원봉사자들이 복구작업을 돕고 있지만 태풍 피해가 워낙 커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피해 집계액 5조5300억…작년 ‘루사’ 최고기록 깨
태풍 ‘매미’로 인한 재산피해가 5조5000억원을 넘어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19일 현재 재산피해가 4조7810억원(공공시설 3조2640억원, 사유시설 1조5170억원)이고, 인명피해는 사망 117명, 실종 13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재산피해 내용에는 산업자원부가 집계중인 부산, 대구, 울산, 경남 마산 등의 산업시설 잠정 피해액 7250억원과 부산항 부두에서 파손된 컨테이너크레인 피해액 267억원이 포함돼 있지 않다.
따라서 이 같은 산업계 피해까지 합치면 총 피해액이 5조5300억원을 넘어 작년의 태풍 ‘루사’ 때 피해액 5조1479억원을 능가할 전망이다. 중앙재해대책본부 관계자는 “잠정 집계대로라면 피해복구액 역시 작년 ‘루사’ 때의 7조1452억원을 훌쩍 넘어 8조원 대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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