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지키려다 수해 키웠다” 생존권 對 환경보호

  • 입력 2003년 9월 21일 18시 25분


강원 정선군 정선읍 귤암리 주민들이 태풍 ‘매미’로 물이 불어난 동강을 나무 보트를 타고 삽으로 노를 저으며 건너고 있다. -정선=연합
강원 정선군 정선읍 귤암리 주민들이 태풍 ‘매미’로 물이 불어난 동강을 나무 보트를 타고 삽으로 노를 저으며 건너고 있다. -정선=연합
‘생존권이 먼저냐, 환경보호가 우선이냐.’

태풍 ‘매미’로 피해를 본 이재민들이 환경단체가 관련시설의 건설을 반대하는 바람에 수해 규모가 커졌다며 소송 움직임을 보이는 등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태풍을 계기로 ‘생존’과 ‘환경’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거제시의 경우=대규모 정전사태가 빚어진 거제지역 시민단체 연대는 정전의 원인이었던 송전탑 붕괴가 관리부실 때문이라며 한국전력을 상대로 수백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26일 이전에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한전은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송전선 복선화 작업을 하고 있지만 거제와 통영지역 일부 환경관련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사업 추진이 늦어지고 있다”며 환경단체 등에 책임을 돌렸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그동안 우리가 전개해 온 거제 계룡산철탑 반대 투쟁 등과 이번 철탑 붕괴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반박, 심한 마찰을 빚었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한전과 환경단체를 비난하는 글이 잇따랐다.

대우조선과 삼성조선 등 거제도 소재 기업들도 대규모 정전으로 엄청난 생산차질을 빚어 한전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인지가 관심사다.

대우조선측은 “한전의 응급복구로 전기 공급이 재개되면서 16일 오후부터 일부 라인을 가동했지만 가동률은 70%선에도 못 미친다”며 “아직 집계는 하지 않았으나 정전에 따른 직간접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소송제기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

▽창녕군의 경우=이번 태풍으로 마을이 물에 잠겨 쑥대밭이 된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 마을 입구에는 ‘환경연합 각성하라, 오리새끼 몇 마리 때문에 사람 죽겠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태풍으로 13일 오후 8시경 국내 최대의 자연늪인 우포늪과 마을 사이의 대대제방 100여m가 붕괴된 것은 제방보강공사를 반대한 환경단체에 책임이 있다는 것.

대대리 주민들은 대책위를 구성하고 주민 150여명이 15일 창녕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 들어가 집기를 부수고 유리창을 깨는 등 항의했으며, 경남도와 낙동강유역환경청에도 항의 방문했다. 대책위는 당국을 상대로 피해 보상과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강력히 요구할 계획이다.

거대한 호수로 변했던 대대리와 인근 대지면 효정리 등 3개 마을 농경지 170ha는 21일 오후까지도 일부 침수돼 있으며 주택 71채가 잠겨 24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주민 김모씨(60)는 “대대리에서 대지면 효정리에 이르는 4km의 대대제방은 일제강점기 때 축조된 것”이라며 “예산이 있는데도 환경단체의 반대를 의식해 관청이 제방보강공사를 수년째 미루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창녕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창녕군이나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 어떤 협의도 해오지 않았고, 제방보강공사에 대해 찬반 의사를 표시한 적이 없다”며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제방보강공사에 대한 공식 입장이 정리되지는 않았으나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며, “제방붕괴 원인에 대한 민관 공동조사를 제안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거제 ·창녕=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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