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유혹하는 음성채팅 03031

  • 입력 2003년 9월 22일 18시 25분


주부 A씨(46·서울 서초구 반포동)는 8월 전화요금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요금이 평소의 3배가량인 22만원이 나왔기 때문. A씨는 ‘음성정보 이용료’라는 항목에 15만원이 적혀 있어 전화국에 문의한 결과 고교생 아들이 ‘03031 성인전화’를 이용한 사실을 알아냈다.

여름방학이 끝나면서 최근 이 같은 학부모들의 문의전화가 전화국에 쇄도하고 있다. 자녀들이 방학 때 집에서 ‘03031’로 시작하는 성인전화 서비스를 대거 이용한 탓이다.

청소년들은 인터넷, 스포츠신문광고는 물론 ‘오빠 나 외로워여’ 등으로 시작되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데다, 성인의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별도의 성인 인증절차 없이 쉽게 통화할 수 있다.

서울 가양전화국 허용수 대리(고객서비스과)는 “03031 전화업자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요금문의가 전국적으로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400여개 업체에서 10만개 이상의 03031 성인전화 회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03031 전화는 녹음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700 전화’와 달리 일반 여성 혹은 ‘아르바이트 여성’들과 실시간으로 음란대화를 나누는 ‘음성채팅’이 가능하다.

KT 통신영업팀 조정연 부장은 “이 전화서비스만으로 전화요금 고지서에 1000만원가량이 나온 집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이 서비스에 대한 등록과 심의 절차를 크게 강화할 것이며, 10월 이후부터는 아예 수십만원 정도의 상한선을 정해 그 이상의 서비스는 이용할 수 없도록 전화서비스업체에 권고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전화서비스는 분당 900∼2000원대라 2, 3시간만 이용해도 수십만원의 요금을 물게 된다. 그러나 관할 행정기관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김철환(金哲煥) 심의부장은 “통신보호비밀법상 대화 내용을 모니터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성인콘텐츠 사업에 비해 심의나 단속이 어렵다”고 말했다. 또 청소년보호위원회측은 “정통부에서 심의업무를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쪽에서 나서기 힘든 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손봉호(孫鳳鎬) 서울대 명예교수는 “선진국의 경우 신용카드번호를 우선 입력해야 하는 등 성인인증절차가 훨씬 복잡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청소년전화인지 성인전화인지 구분도 안 되는 지경인데 당국에서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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