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원고 입증책임 엄격 적용" 법원 판결

  • 입력 2003년 9월 24일 17시 45분


향후 민사소송에서 원고측의 입증책임이 보다 엄격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등법원 제20민사부(재판장 민일영)는 23일 J씨 가족이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경찰기록은 추측으로 작성돼 그대로 믿기 어렵고 정황은 있지만 증거가 부족하므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J씨는 지난 2000년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부근 북한강(수심 10m)에서 발견된 차량(렌트카) 내부의 사체 골반과 다리뼈가 ‘3년 전에 행방불명된 자신의 30대 딸의 것으로 보인다’며 렌트카 보험사를 상대로 2억3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J씨는 △발견된 사체가 자신의 딸과 같은, 키 155cm의 30대 여성으로 추정되고 △딸이 당시 사고차량을 빌린 헤어진 애인 B씨와 “양수리에 함께 있다”고 동생에게 전화를 했고 △운전부주의로 북한강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당시 경찰의 교통사고조사기록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법원은 1심에서 J씨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보험사는 J씨 가족에게 모두 1억98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사고차량이 B씨에 의해 임차된 것과 차량 내 사체가 발견된 것을 제외하고는 △사체가 J씨의 딸이라는 확인이 불가능하고 △차량 운전자의 신원은 물론, 차량이 강으로 추락한 시기, 운전부주의 여부 등이 모두 추정된 것으로 증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1심에 불복 항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심에서 보험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1심의 판결을 정면으로 뒤엎어 J씨의 청구를 “이유없다”고 기각했다.

보험사의 소송대리인 김창규 변호사는 “경찰의 추정에 의해 작성된 기록에만 의존해 1심 판결이 나왔다”면서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원고측의 입증책임을 엄격하게 적용해 판결했으며 향후 많은 유사사건에서도 판단의 기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97년 6월28일 B씨는 서울의 한 렌트카 회사에서 승용차를 빌렸으나 반납하지 않아 수배됐으며 실종된 이 차량은 3년이 지난 2000년 9월에 북한강 바닥 진흙 속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 차량은 열쇠가 꽂힌 채(ON) 전조등이 상향으로 조작된 상태였으며 앞부분이 심하게 파손되고 뒷좌석에 남자용 손목시계와 휴대폰이, 조수석에서는 여자 핸드백과 검정하이힐이 발견됐었다.

또 유리창밖 후사경에는 골반과 다리뼈가 들어 있는 나일론 팬티스타킹이 걸려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뼈의 유전자를 감식했으나 부패가 심해 확인이 불가능하고 단지 키 153cm의 30대 초반 여성으로 추정된다고 밝힌바있다.

J씨의 가족은 97년 6월30일 “양수리에 B씨와 함께 있는데 빨리 집에 갈 것이니 걱정말라”는 전화를 마지막으로 B씨와 딸이 현재까지 행방불명이라며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그 사체는 딸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은 B씨가 J씨의 딸을 태우고 운행하다 운전부주의로 강에 추락한 교통사고로 사건을 정리했었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