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학교 오르는 길에는 몸과 마음 맑아지는 생명들뿐이다. 일찍 일어난 새의 지저귐, 풀벌레 소리, 안개 속에 내려온 햇볕, 종종걸음 치는 청설모 몇 마리, 골짜기 시냇물 소리, 깊고 높은 전나무들….
그리고 등 뒤에서 그 생명들을 깨우는 우리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이가 아침에 만나자고 하고서 늦게 나왔어요.” “선생님, △△이가 누구한테 관심 있대요.”
저희들끼리 장난치다 도망가는 아이, 내 팔을 잡아당기는 아이, 뒤에서 끌어안고 나를 번쩍 드는 아이, 말없이 웃음만 짓는 아이….
그 순하고 밝은 아이들이 통통거리며 세상의 아침을 여는 소리가 나를 환하게 흔들고 간다.
2. 두렵고 소중한 일
어렸을 때 내 꿈은 시골학교 선생님이었다. 낡은 자전거를 타고 논길을 따라 학교에 가고 노을이 내린 강물을 따라 집에 돌아오는…. 다른 무엇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대학시절, 미아리 산동네에서 공부방을 하며 ‘교육이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란 걸 아프게 배웠다. 콧물을 닦아주고, 얼굴을 씻기고, 나보다 큰 아이를 업어주고, 때 묻은 옷과 이불을 아이들과 함께 빨며 ‘내 삶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배우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여중에서 3년, 남고에서 1년을 보내면서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은 늘 두렵고 소중한 일이었다. 아이를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봐 주고 이해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낮추어 길가의 작은 꽃잎을 바라볼 수 있을 때라야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쳐 올바르고 똑똑한 사람으로 바꿔내는 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 아이가 삶의 순간마다 느끼는 소중한 생각, 사소하나 진심 어린 질문에는 정성을 쏟지 않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은 몸짓과 표정으로도 말하고, 머뭇거리는 작은 움직임으로도 말하고, 관심 가지지 못할 아주 작은 이야기로도 우리에게 늘 말을 건다. 아이들은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또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3. 새로운 꿈
“교육공동체의 일원이자 교육적 운동가로서 동지애를 나누며 작은 발걸음부터 함께 내딛고자, 잔잔한 감정과 진솔한 연민으로도 이 사회를 움직일 진정한 사람들.” (이우학교 교사상 중에서)
이우학교가 문을 연 지 한 달이 다 돼 간다. 교실 베란다에 서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하고, 교실 화장실 청소하고, 수업하고, 아이들과 놀고 이야기하며 때로 눈물 흘리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나도 울고 하는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가르침과 배움은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수업을 하면서도, 베란다에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화장실 변기를 닦으면서도 우리는 함께 배울 수 있다.
이우학교에서 지금 아이들은 행복할까. 학교에서는 어떤 아이도 소외돼서는 안 된다는 우리의 신념을 나는 지금 잘 지켜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아이들 앞에서 거짓말 하는 교사는 아닌가. 나는 스스로 상생과 공동체적 삶을 실천하고 있는가. 우리가 이야기했던 삶의 소중한 것들, 결국엔 스스로 변하고 함께 나눠야 만날 수 있는 크고 깊은 삶의 지향을 나는 지금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하루하루, 나를 불러 세워 묻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는 늘 낭만적이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늘 부끄러웠던 교사였다. 하지만 나는 좋은 교사가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여 때로 나는 긴 싸리비로 눈 맑은 아이들의 등굣길을 열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는 저녁노을과 더불어 작별인사를 전하는 청소부가 되고 싶다. 이우학교에서 나는 꼭 책을 든 선생님이 아니어도 좋다.
교사로서 늘 부족하고 어리석었던 내가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이우학교라는….
▼약력 ▼
△1973년생 △고려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수원 매향여자중학교, 성남 성일고등학교 국어교사 △새로운 ‘도시형 대안학교’로 9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개교한 이우학교 교사로 재직 중
김철원 이우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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