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격투기 모르면 왕따 당해요” 청소년들 따라하기 부작용

  • 입력 2003년 9월 24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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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부산 D중학교 3학년 A군(15)은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점심시간에 옆 반 친구 B군과 이종(異種)격투기 기술을 시험하다 코뼈가 부러졌기 때문.

A군은 B군을 상대로 브라질 이종격투기 선수 반다레이 실바의 주특기인 무릎차기(목을 두 팔로 누른 뒤 무릎으로 턱을 치는 기술)를 구사했고, 이에 격분한 B군은 태국 무에타이의 전형적 기술인 팔꿈치 돌려치기로 맞대응했다. B군의 팔꿈치는 정확히 A군의 코를 쳤다. 팔꿈치로 치는 것은 무에타이와 미국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등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위험한 기술.

4각의 링에서 선혈이 낭자하게 치고받는 이종격투기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청소년들이 이종격투기를 흉내 내다 큰 부상을 입는가 하면 인터넷에서는 ‘이렇게 때려야 상대에게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주제로 청소년들이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가장 잔혹한 ‘무규칙 격투기’는 19세 이상 관람가 프로그램이지만 주말 낮 시간에 TV에 방송되는 등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격투기의 폭력성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프로선수 뺨치는 폭력성=부산 D중생 김모군(15)은 “옛날 싸움은 가벼운 주먹다짐에 그쳤지만 요즘은 학생들 싸움에도 이종격투기의 고급 기술이 도입돼 팔이 부러지거나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입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의 한 고교에서도 최모군(16)이 친구와 장난치다 암바(팔 꺾기 기술의 일종) 공격을 당해 손목 인대가 늘어났다. 또 16일에는 서울 S고교 C군(17)이 같은 반 친구 D군에게 무릎차기를 하다가 D군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탈골되기도 했다.

이 학교 1학년 김모군(16)은 “TV 드라마나 연예인 얘기보다 이종격투기 얘기가 더 화제”라며 “피 튀기는 이종격투기 시합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은 물론 ‘나도 한번 저렇게 해봐야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TV 방송=이종격투기란 서로 다른 무술을 연마한 선수들이 특별한 규칙 없이 누가 가장 강한가를 겨루는 스포츠. 이 가운데 ‘무규칙 격투기’는 깨물기 눈 찌르기 등 몇 가지 외에 모든 싸움 기술을 허용하는 스포츠로 ‘길거리 싸움’과 거의 다를 바 없다.

올해 초부터 SKY KBS가 케이블과 위성채널을 통해 일본 무규칙 격투기 대회인 PRIDE-FC(19세 이상 관람가)를 방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자 SPRIT-MC, 네오파이트 등 이종격투기 대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케이블과 위성 스포츠 채널에서는 이 대회를 주말 낮 시간대에 버젓이 방송하고 있다. SKY KBS는 네오파이트 시합을 올해 추석 낮 시간에 방영해 가족과 함께 TV를 보던 시청자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성신여대 심리학과 채규만(蔡奎滿) 교수는 “잔인한 스포츠가 청소년들에게 여과 없이 방송되는 게 문제”라며 “모방심리가 많은 청소년기에는 공격성과 폭력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어 가정에서 부모들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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