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버다이빙 장비를 갖추고 어선에서 수직 강하해 수심 29.5m 해저에 이르자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세계가 펼쳐졌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해저 연산호 군락이었다. 남방파제 축조 공사를 놓고 해양생태 보호론자와 제주지방해양수산청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게 만든 주인공이다.
연산호인 가시수지맨드라미가 수줍은 듯 자태를 뽐내고 분홍바다맨드라미는 나들이를 나온 어린이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2m가 넘는 해송(무낭으로 불리는 각산호류)은 조류에 따라 이리저리 춤추고 가시산호는 부채처럼 손을 벌렸다.
바위에 돌산호가 터줏대감처럼 보금자리를 틀고 있었고 자그마한 뿔산호가 나뭇가지처럼 촉수를 뻗었다.
산호 사이에 자리돔이 손님을 반기듯 이리저리 떼지어 나타나고 아열대 어종인 선명한 노란 빛깔의 나비고기가 돌돔 벵에돔 놀래기 등과 어울려 다녔다. 마치 ‘꽃동산’을 찾은 듯했다.
수심 15∼30m의 해저 암반에는 수많은 산호가 서식해 ‘산호공원’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그러나 해저에서 남방파제 쪽으로 옮겨가자 산호공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방파제 축조 공사를 앞두고 바위와 자갈을 쏟아 부어 산호가 없어진 것.
제주해양수산청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300억원을 투자하는 서귀포 외항개발계획에 따라 동방파제(670m)를 완공한 데 이어 남방파제를 130m 연장하는 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남방파제 연장 축조공사가 예정된 해역은 2000년 지정된 문섬 및 범섬 천연보호구역(975만m²·천연기념물 제421호)에 포함된다.
방파제 공사가 이뤄지면 방파제 경사면이 연산호 서식지를 덮게 된다. 또 서귀포 앞바다에 ‘병목’ 현상이 발생해 해류가 거세져 암반에 붙어 있는 연산호가 떨어져 나가게 된다.
해저 취재에 동행한 김병일(金丙壹·45·태평양다이빙스쿨 대표)씨는 “남방파제 공사가 진행되면 산호 군락은 매장된다”면서 “산호가 지닌 세계적인 가치를 외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산호류는 120여종으로 이 가운데 70여종은 서귀포 앞바다에서만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새로운 종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남방파제 축조 예정 해역은 환경부가 지정한 보호생물(산호류) 15종 가운데 13종이 서식하고 있다.
제주해양수산청은 3월 공사를 위해 제출한 ‘문화재 현상 변경 신청’이 해양생물 악영향과 해류 변동에 따른 생태계 변화 등의 이유로 불허되자 최근 방파제 축조 공법을 바꿔 다시 신청서를 접수시켰다. 남방파제 공사지역 해저 경사면의 면적을 2만7000m²에서 1만4000m²로 줄이고 해수가 통과할 수 있도록 인공어초로 벽을 쌓겠다는 것.
제주해양수산청 박민채(朴珉彩) 항만공사과장은 “남방파제 연장 축조 공사가 이뤄져야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고 기존 동방파제의 기능을 살려 항만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상대 오윤식(吳潤植·해양생물학) 교수는 “남방파제 축조 공사는 해류의 흐름을 빠르게 해 300m가량 떨어진 문섬 주변에도 영향을 미쳐 서귀포 앞바다가 자랑하는 생물 다양성은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수중 비경에 매료돼 8년 전 서귀포에 정착한 독일인 랄프 도이츠(42)는 “서귀포 앞바다의 연산호 군락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24일 문화재청은 제주해양수산청이 제출한 내용을 받아들여 공사를 허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남방파제 주변 산호공원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제주=임재영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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