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8시경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이우학교 중학생 60여명은 강당에서 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선무도(禪武道)를 수련하고 있었다. 이달 1일 개교한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의 하루는 선무도로 시작된다. 선무도는 우리나라 승려들이 요가 명상 단전호흡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해 정신과 육체를 단련하는 수행법으로 몸놀림이 매우 유연하다.
고교생은 월 수 금요일, 중학생은 화 목요일 오전 7시50분에 등교해 선무도를 배운다.그 외의 날은 수업시간에 맞춰 오전 9시까지 등교한다. 현재 중학생이 3개 학급 61명, 고교생 4개 학급 48명이 재학 중이다.
○수업
중 1학년생 수업시간. 9400m²의 땅에 600m² 크기 공동주택과 400m² 크기의 단독 주택을 몇 채나 지을 수 있는지를 찾는 문제가 주어졌다. 학생들은 4, 5명씩 ‘모둠’을 이뤄 서로 의견을 나눈 뒤 이를 정리해 발표했다. 교사 1명이 수업을 진행하고 다른 교사 1명은 학생들의 의견을 들으며 이를 정리해 주었다. 강병욱 교사(38)는 “학생들이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상황을 수학과 연결시켜 부등식, 공배수, 일차함수 등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위스콘신대 사범대 교육연구소와 네덜란드 우트레흐트대 프로이텐탈 연구소가 미 국립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1991년부터 1996년까지 공동 개발한 교재를 번역해 사용하고 있었다. 고교생들은 영어시간에 교사의 지시에 따라 영자신문에 실린 기사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이야기했다. 국어수업은 TV광고(CF)에 대해 작성한 보고서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우학교는 교육과정에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시한 필수분야를 최대한 반영하고 학교의 특성을 살려 농사, 비정부기구(NGO) 활동, 철학수업 등을 포함시켰다.
이날 오후 학생들은 김용우 교사(40)와 함께 학교 앞 800평가량 되는 밭에서 계곡물을 길어 배추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거나 돌을 골라냈다. 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배추는 두 달 뒤 학생들이 직접 김장을 담글 재료.
수업시간은 중학생 90분, 고등학생은 100분 단위의 ‘블록’으로 이뤄진다. 하루에 3, 4개 블록으로 시간표가 짜여진다. 블록간 쉬는 시간은 30분. 고교생 48명은 6개 반으로 나뉘어 수준별로 수학을 배운다. 방과 후 원하는 학생의 수준에 맞춰 영어 지도가 이뤄진다.
이수경양(13)은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수업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넷 학습
수업내용은 학교 인터넷(www.2woo.net)을 통해 대부분 공개된다. 교사들이 인터넷에 읽기 자료나 과제 등을 미리 올려놓고 학생들은 과제를 작성해 역시 인터넷에 올린다.
과제물은 대부분 학생이 특정 주제에 대해 조사해 자신의 의견을 적는 방식이다. 국사과목은 ‘1800∼1899년까지 발생한 주요 사건을 연표로 만들어 보고 이를 주요 사건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쓰시오’라는 방식의 과제를 낸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방과 후 적어도 2시간 이상씩 과제연구를 해야 한다.
서희양(16)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내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숙제가 많다”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긴 하지만 논리와 사고력 등을 키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사설학원에 다니는 학생은 소수다. 대개 주말을 이용해 자신이 필요한 한 과목 정도를 수강하는 학생이 많았다.
○맞춤식 건물 및 비품
학교 비품의 대부분은 학교운영 이념에 맞게 자체 제작된 것이 특징. 책상은 모둠수업을 할 때 서로 맞물려 앉거나 공유 판자를 두어 공동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의자에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수업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방석이 부착돼 있다. 교탁도 높이 조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음악실 의자는 이어 붙이면 무대로 변한다. 미술실 책상은 스케치북을 받치는 이젤로 사용할 수 있다. 과학실 책상에는 냉수와 온수, 증류수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설치돼 있고 화학실험 등에 대비해 흡입장치가 마련돼 있다.
3개 동의 학교 건물에는 태양열과 지열을 이용해 발전한 전기가 공급된다. 물은 지하수를 사용한다. 복도 벽은 전시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명이 설치돼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자갈이 깔린 마당에서는 야외공연이 가능하다. 각 교실 베란다, 건물 사이를 연결한 다리 등지에서 최대 700여명이 이 공연장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학교에서 사용한 물을 3단계 정화과정을 거쳐 흘려보낼 생태연못을 조성하고 있다.
○학교생활
학생들 스스로 논의해 규율을 정한다. 교복 착용 여부나 교칙 등도 학생들이 만들 예정이다. 또 학생들이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유기농 쌀과 채소로 음식물을 만들어 급식한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는데 타로카드 동아리, 만화 동아리 등이 있다.
지역에 뿌리내리는 학교를 지향하는 의미에서 기숙사는 없다. 이 때문에 통학거리가 먼 학생은 친척집에서 다니거나 같은 학교 학생의 집에서 사는 경우도 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이우' 학생 어떻게 뽑나▼
이우학교 학생 선발은 서류전형과 캠프 및 심층면접으로 이뤄진다. 전국에서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고등학교 서류 전형은 ‘내신 또는 검정고시 성적 40%+학생 자기소개서, 추천서 및 학교생활기록부(비교과) 40%+학부모 자기소개서 20%’로 한다. 성적은 수학 능력 여부를 가리는 기준으로만 사용된다.
자기소개서에는 사회성 및 공동체성을 배웠던 경험, 스스로 흥미와 관심을 느껴 탐구했던 과목이나 특기 적성 분야의 활동, 가치관이나 장래 희망, 지금까지 읽었던 책 내용이나 영화 연극 등 문화 활동 경험에 대한 느낌 등을 담아야 한다.
학부모 자기소개서에는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점,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사회 발전이나 공익을 위해 참여했던 활동 등을 적도록 하고 있다. 또 학교 교육 이념을 존중하며 이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해야 한다.
1차 서류전형에서 정원의 1.5배수 안팎의 학생을 선발해 3일간 심층 면접(2차 전형)한다. 2차 전형에서는 ‘팀을 이뤄 일정 금액을 주고 장을 본 뒤 음식을 만들어 설거지까지 끝내기’, ‘내가 장애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형태의 과제가 주어진다. ‘수학적성 및 탐구력 40%+사회성 및 인성 30%+학생 종합 면접 20%+학부모 면접 10%’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특별전형(저소득층자녀 전형, 사회공헌자 자녀 전형, 지체부자유자 전형)으로 정원의 10% 이내의 학생을 선발한다.
고교 신입생 원서접수 기간은 10월 20일부터 11월 3일. 학교 홈페이지(www.2woo.net)에서 지원서를 내려받을 수 있다.
중학생의 경우 1차 전형은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40%+학생 자기소개서 30%+학부모 자기소개서 20%+추천서 10%’다. 2차 전형은 ‘수학적성 40%+학생 개인 면접 30%+학부모 면접 20%+학교장 면접 10%’로 선발한다. 원서 접수는 11월경.
학급당 학생 수는 20명 안팎으로 한 학년당 중학생은 3개 학급 60명, 고등학생은 4개 학급 80명이다. 등록금은 학생 1인당 연간 240만원. 일정 비율의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학생 상호 평가, 자기평가, 보고서 등으로 학생을 평가한다. 지필고사는 교사 재량껏 실시한다. 평가는 대부분 서술식으로 이뤄진다. 지식만이 아니라 수업 태도 등을 함께 평가한다. 정규학교여서 대학 입시에서 내신 성적자료를 산출할 경우 서술된 성적 평가는 숫자로 환산된다. 이광호 기획실장(39)은 “일부 학교에서 내신 부풀리기 등이 만연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학교에서 점수 이상의 정직을 배우도록 엄격히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정광필(鄭光弼) 교장은 “입시교육을 목표로 하지 않지만 대학입시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학입시가 종합적인 사고력과 분석 및 비판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우학교의 개인별 교육과정과 자기주도적 학습 시스템이 이 같은 추세에 부합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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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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