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박승춘/어느 초등학교의 ‘들꽃 정원’

  • 입력 2003년 9월 29일 18시 01분


며칠 전 인천 남구 관교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와 학교에 간 적이 있다. 교내 도서관에서 나오던 중 후문 쪽 화단에서 연세가 지긋한 분이 풀을 뽑는 장면을 봤다. ‘들꽃마당’이란 화단에는 연보라색 개미취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성장기를 농촌에서 보낸 필자에게는 낯익은 꽃이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런 꽃을 가꾸는 분이 누군가 궁금해서 아이에게 물었더니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필자는 화단 가까이 다가가 “선생님, 야생초들이 참 보기 좋네요”라고 말을 걸었다. 선생님은 “작년에 산으로 들로 다니며 한 포기씩 구해서 심은 게 이렇게 많아졌어요. 내년에는 자리를 잡겠죠”라고 말했다. ‘식물원에서 구해다 심었겠지’라고 생각했던 필자는 적잖이 놀랐다. 선생님의 호미를 건네받아 아이와 함께 풀을 뽑으니 마음이 여간 즐겁지 않았다.

이 학교는 외부시설은 평범하지만 도서관이나 학교환경 등이 알차다. 본관 앞에 설치된 고무통 수십 개에는 갖가지 야생초와 연꽃 등 수생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고무통 물 속에는 실잠자리가 알을 낳고 있었고, 물 달팽이가 스르르 미끄러지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쓰디쓴 구절초가 활짝 피어 나비를 불러들이고 목화꽃이 진 자리엔 통통하게 목화솜이 영글어간다. 아이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 앞에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을 되뇌며 마냥 신기해했다.

학교 신관 앞에는 조(粟)와 하얀 메밀꽃이 어우러져 활짝 피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그만 꽃잎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본관과 신관을 잇는 2층 통로는 나팔꽃으로 장식하는 등 자칫 삭막해보일 수 있는 공간까지도 살뜰히 가꾸고 있었다.

화원이나 식물원에 가도 외국의 꽃과 식물이 많은데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도 않던 우리 야생화와 들꽃들이 학교 화단에서 사시사철 꽃을 피워내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인가. 커다란 고무통에 흙과 연못물을 채워 넣고 꽃을 키우는 선생님의 정성이 너무 감사했다. 유난히 잦았던 비가 그치고 가을 하늘이 파랗다. 오늘도 가을꽃을 빨리 보러가고 싶어 아이의 점심을 준비하는 마음이 바쁘다.

박승춘 주부·인천 남구 관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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