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죽음을 맞이해 “사재를 털어 1억원을 모교 장학금에 보태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에 따라 그의 남편 김상철씨(70·전 극동정유 임원)는 7일 어렵사리 마련한 1억원을 학교에 기부할 예정이다.
김 전 교장의 모교 사랑은 교사로 재직시부터 남달랐다. 1999년 퇴직하기 직전에는 보성장학회 설립을 주도했고, 사재 2000만원을 보태 3억원의 장학금을 마련했다.
퇴직 후에도 장학금 증액에 힘썼으나 금리가 계속 떨어져 연간 이자가 2000만원 정도밖에 지급되지 않자 병상에서도 “장학금이 10억원은 돼야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데…”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리고는 1억원을 보탤 결심을 한 것.
그의 별명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고모’,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사도라’다. ‘고모’는 학생들에게 너무 친숙하고 항상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 상벌위원회가 있을 때마다 김 전 교장은 “퇴학은 절대 안 된다”며 학생들이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사도라’는 회의시간을 제외하고는 ‘24시간 돌아다닌다’고 해서 붙은 별명. 교장이 학교에 문제가 없는지 항상 살피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교사들도 계속 긴장해야 했다고 보성여중고 교사들은 전했다.
이북 평남 출신인 김 전 교장은 이화여중 재학시 6·25전쟁이 터져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되자 보성여중으로 옮겨 다니면서 이 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보성여고와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0년 교사가 모자란 모교의 요청으로 화학교사로 근무하기 시작했고, 1999년까지 39년간 모교를 떠나지 않았다. 1999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1966년부터 김 전 교장을 옆에서 지켜본 보성여고 김정남 교장은 “김 선생님은 오직 학교와 학생들만을 위해 헌신하신 참교육자셨다”고 말했다.
그는 사망 후 시신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기증했다. 남편 김씨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며 인터뷰에 끝내 응하지 않았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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