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비 못 냈다고 학생 내쫓는 학교

  • 입력 2003년 10월 5일 18시 51분


한 지방 사립고교가 수업료를 못 낸 학생 103명에게 출석정지 처분을 내렸다는 보도는 이 땅의 자식 가진 부모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태풍 ‘매미’ 피해 때문에 가뜩이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학비를 못 냈다고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다니, 더구나 학교에 오더라도 결석처리를 했다니, 이런 비교육적 처사를 하는 곳을 학교라 할 수 있는지 개탄스럽다.

그러나 학교와 도교육청은 교육법과 학칙에 따라 취한 조치라며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보도가 나간 뒤에야 도교육청은 장기 결석자를 제외하고 경제 사정이 어려운 학생을 파악해 수업료 감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학교측에 요청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수해지역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지원하겠다는 9월 18일의 교육인적자원부 발표는 무엇이었는가.

국감자료에 따르면 올해 수업료를 내지 못한 공립 중고교생이 지난해보다 4배나 늘어났다. 계속되는 경기침체 여파로 분석된다. 반면 국고에서 지원하는 저소득층 자녀 수업료 보조금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인적자원 말고는 기댈 데가 없는 나라에서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늘고, 이에 대한 지원은 감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바에야 국민소득 1만달러가 무슨 소용이고 2만달러가 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동북아 경제 중심’을 지향한다는 구호조차 부끄럽다.

말뿐인 복지국가 건설은 필요 없다. 부도덕한 부실기업 살리는 데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돈 없어 학비 못 내는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내몬다는 것은 미래에,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학부모가 부담하는 공교육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인 반면 교육여건은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는 조사도 나온 현실이다. 정부는 나랏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마땅한지 우선순위부터 다시 매겨야 한다. 교육에 대한 정당한 투자를 외면하면 나라의 장래도 암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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