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회계담당 임원인 최모씨는 2000년 3월 초 박재영 당시 현대상선 상무로부터 “김 사장이 200억원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말을 듣고 거래처에 화물선적비 등을 송금한 것처럼 허위전표를 꾸며 재정부에 넘겼다.
같은 해 3월 7일 이 회사 재정담당 임원 유모씨는 허위전표를 이용해 1800만달러를 빼냈으며 같은 달 7일과 8일, 13일과 14일 모두 네 차례에 걸쳐 40억∼50억원씩 자기앞수표로 인출한 뒤 서울 및 수도권 일대 10여개 은행을 돌아다니며 3월 말까지 현금화했다.
유씨는 비자금을 현금으로 바꿔 20여평 규모의 현대상선 본사 지하창고에 가져와 직원들과 함께 여러 크기의 상자에 나눠 담았고, 그때마다 김 전 사장의 회사차인 다이너스티 차량에 한번에 돈 상자 16∼18개씩을 실었다.
김 전 사장은 돈이 실린 차를 직접 몰고 서울 하얏트호텔 나이트클럽 주차장으로 이동,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중고교 동창이자 현대 계열사 사장인 전모씨를 만나 그의 다이너스티 승용차 안에 돈 상자를 옮겨 실었다.
전씨는 이날 법정 증언에서 “별명이 ‘열마디’일 정도로 과묵한 정 회장이 전화를 걸어 ‘김충식 사장이 뭔가를 주면 이익치(李益治) 회장에게 연락해라’는 식으로 짧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전씨가 돈을 받은 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에게 연락하자 이 전 회장은 돈을 전달할 장소와 차량번호를 지정해 줬으며, 전씨는 그 지시에 따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지정된 장소로 가 돈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돈 상자를 건넸다.
그러나 전씨는 “그 돈이 누구에게 전달되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영완씨의 운전사들과 전씨는 서로 “일면식도 없다”고 말했으며 김씨 운전사들의 증언내용도 전씨의 증언과 달라 전씨가 전달한 돈과 김씨가 받은 돈이 동일한 것인지 여부가 논란이 됐다.
전씨는 “돈 상자의 크기가 다른 것이 있었으며 돈을 전달한 시점도 3월경”이라고 말한 반면 김영완씨의 운전사인 김모씨와 박모씨는 “돈 상자의 크기가 모두 똑같았으며 돈을 전달받은 시점은 6월경”이라고 엇갈린 증언을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검찰은 “전씨가 전달한 돈과 김영완씨가 받은 돈이 동일한 것이라고 무리하게 연관시킬 생각은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한편 현대상선 크루즈사업을 담당했던 임원 이모씨는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금강산 여행 상품의 가격을 1300달러에서 1000달러로 낮추는 대신 카지노 및 면세점 사업을 허가받기로 청와대측과 협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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