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담]언어연구 장병혜 박사 vs 교육 사이트운영 이신애씨

  • 입력 2003년 10월 16일 16시 40분


“굳이 조기유학을 보내거나 여러 학원을 전전하지 않아도 제대로 된 환경만 갖춰준다면 어떤 아이든 영어를 잘할 수 있어요. 왜? 영어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생활의 기술이니까요.” 장병혜 박사(왼쪽)와 이신애씨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굳이 조기유학을 보내거나 여러 학원을 전전하지 않아도 제대로 된 환경만 갖춰준다면 어떤 아이든 영어를 잘할 수 있어요. 왜? 영어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생활의 기술이니까요.” 장병혜 박사(왼쪽)와 이신애씨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영어를 잘하면 우대받는 게 아니라, 못하면 천대받는 시대. 조기유학은 엄두도 못 내고 아이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칠 실력도 없는 ‘토종’ 엄마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99년부터 부모를 위한 교육정보 사이트 ‘잠수네(www.jamsune.com)’를 운영해 왔고 최근 ‘잠수네 아이들의 소문난 영어공부법’을 펴낸 이신애씨(40)와, 미국에서 오랫동안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이중언어 교육을 해왔고 최근 ‘아이는 99% 엄마의 노력으로 완성된다’를 펴낸 장병혜 박사(71)가 만나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잠수네’에서는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영어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천천히 가자는 거지요.

▽장=서너 살 때 시작하면 아주 좋겠지만 초등학교 5, 6학년 때부터 배워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한국에서는 너무 심하게 아이들을 달달 볶아요. 그래갖고 애들이 어디 살겠어요.

▽이=저희가 보기에도 그래요.특히 태교로 영어를 가르친다는 젊은 엄마들도 있다던데 참 안타까워요.

▽장=말도 안 돼요. 성격은 태교로 가르칠 수 있겠지만 어떻게 언어를 태교로 가르쳐요. 그렇게 신경증적 성향의 엄마 밑에서 자라면 아이들이 되레 불행해집니다.

▽이=그래도 영어를 못하는 부모 입장에선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부모를 보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못하는 것 같아서요.

▽장=그거, 원어민 수준이 아닌 엉터리 발음이면 부모가 영어로 아이에게 말하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해요. 엄마가 서툰 발음의 영어로 섣불리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면 안 돼요. 그렇게 나쁜 영어에 오염시키면 안 돼요. 차라리 테이프를 들려주고 비디오를 보여주는 게 낫죠.

●눈높이 영어환경이 중요

▽이=그런가요…. 하긴 ‘잠수네’도 부모가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고, 외국에 나갈 환경도 못되고, 사교육에만 의존하기도 뭐한 상황에서 아이들 영어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런 고민에서 시작됐어요.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에게 맞는 영어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주는 일이었어요. 차고 넘치도록 영어 소리를 듣게 하다보면 아이들이 들은 대로 따라 말하고, 글자와 소리를 맞추니까 책을 읽게 되고, 책을 읽으니까 말도 터지고 쓰기도 되더라고요.

▽장=그렇죠. 듣기가 가장 중요해요. 굳이 순서를 들자면 듣기를 통해 영어문장에 익숙해진 뒤 그 문장에 속한 단어를 하나씩 짚어주고 단어와 의미를 연결시킬 수 있을 무렵부터 정확한 철자를 짚어줘도 늦지 않아요. 서너 살 때부터 유명한 영어 동시, 동요를 들려주고 외우게 하면 좋아요.

▽이=글쎄요. ‘잠수네’에서는 딱히 외우게 하지 않아도 영어를 배운 아이들이 많이 있는데요.

▽장=유아 영어교육에서 암기는 대단히 효과적이에요. 과도한 암기가 아이의 창의력을 죽인다고들 하는데 잘못된 상식입니다. 한국에서는 암기가 주입식 교육이라고 해서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 사람은 외워야 합니다.

▽이=하지만 아이 스스로 절박한 동기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외우게 하면 영어를 싫어하게 하는 큰 원인이 되더군요.

▽장=애들이 싫어한다고 포기하면 부모가 잘못하는 거죠. 하기 싫은 것을 하고 싶도록 유도해 줘야죠. 젓가락 쓰기를 싫어해도 억지로라도 가르치듯 훈련은 역시 훈련인 겁니다.

▽이=제 이야기는 아이들의 차이를 인식하자는 거죠. 물론 암기를 잘 하는 아이도 있겠죠.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는 암기보다 영어를 재미있게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잠수네’에서도 자기 아이처럼 좀 떨어지는 것 같던 아이가 몇년후 나아지는 것을 보고 우리 아이도 희망이 있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아이들은 엄마가 믿는 만큼 자라잖아요.

▽장=그렇죠. 아이의 발전 속도보다 아이가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했는지가 더 중요하죠. 그러려면 아이가 배운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피드백 역할을 해줄 롤 모델이 필요해요. 꼭 영어전문가일 필요는 없고 아이 입장에서 실수를 되짚는 과정에서 수치심 없이 긍정적 학습을 유도해낼 수 있어야 해요. 그걸 엄마가 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도 좋고요.

▽이=일부이긴 하지만 조기 영어 교육에 치중하다 우리말에 장애를 일으키는 아이들도 간혹 보고 있어요. 우리말 책을 안 읽으니까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바보가 되어 버리거든요. 영어를 가르치기 이전에 한글 책에 먼저 재미를 느끼게 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글문장 잘쓰면 영어도 잘써

▽장=그럼요. 책 자체에 재미를 먼저 가져야죠. 미국에서는 애들 생일선물로 책을 많이 줘요. 책이라는 매체와 먼저 친해져야 한글책이든 영어책이든 보게 되는 겁니다. 미국에서 이민가족 자녀들을 봐도 한국어 문장을 잘 쓰는 아이들이 영어로도 잘 써요. 문장이라는 게 사고를 조직화하는 거니까요. 어느 나라 말이든지 문장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생각하는 사고력을 먼저 똑바로 만들어놔야 합니다.

▽이=‘잠수네’에 중고생 부모도 있는데 다들 영어에 치중하다 보니까 요즘은 아이들의 영어 성적에서는 변별력이 거의 없대요. 오히려 국어에서 성적 차이가 난다고들 하더라고요. 우리말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관건이 되어버린 거죠.

▽장=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서 영어 교육을 하는 까닭은 이 매개체를 잘 익혀서 국제무대에서 치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영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부모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영어 흥미 잃게되는 10가지▼

1.여러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면서 하루 3시간 이상 영어의 바다에 밀어 넣기

2.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은 다 따라하기

3.귀가 얇아 광고를 무조건 다 믿고해보기

4.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를 동시에 다 시키기

5.“누구는 뭐 끝냈대”라며 다른 아이와 비교하기

6.영어비디오 보는 아이한테 무슨 뜻인지 물어보기

7.한 번 산 교재니까 싫어해도 끝까지 시키기

8.영어경시대회에 참가시켜서 급수,인증서 따게 하기

9.하루에 몇 번씩 집중듣기 시키기

10.뭐든지 통째로 외우게 하기

‘잠수네 아이들의 소문난 영어공부법’에서

▶ 장병혜 박사는?

1964년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와이대 등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뉴저지의 ABCD(Asian Bilingual Curriculum Development)센터에서 영어와 한국어로 된 교과서를 개발하는 등 이민자녀의 이중언어 교육 시스템 확립에 노력해 왔다. 이승만 정부 시절 국무총리 등을 지낸 고 장택상이 그의 아버지이다.

▶ 이신애씨는?

두 아이의 엄마. 97년부터 4년간 제주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 교육정보에 갈증을 심하게 느껴 인터넷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이를 계기로 99년 12월 ‘잠수네 커가는 아이들’ 사이트를 열게 됐다. 이웃이라도 자녀들 교육에 대한 정보는 서로 알려주지 않는 요즘 시대에 ‘잠수네’는 교육 정보를 공유하는 독특한 인터넷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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