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3을 모셔라” 非평준화고교 신입생 확보戰 과열

  • 입력 2003년 10월 16일 18시 30분


《15일 오후 경북 포항시내 A고교 교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시내 B중학교 3학년 담임교사의 전화였다. 그는 A고교 교감에게 “다른 학교는 다 찾아오는데 왜 A고는 찾아오지 않느냐. 우리 학교 학생은 필요없느냐”고 물었다. 예의를 갖추었으나 따지는 듯 들릴 수도 있는 전화였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교감은 수첩을 뒤져보았다. ‘B중 50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B중에 50만원을 줄 예정이라는 뜻. 그는 “학생 모집이 갈수록 어려워져 중학교를 돌면서 ‘인사’를 하고 있는데 교사에게서 막상 이런 전화를 받으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학생 ‘밀거래’ 실태=중학교 졸업생 수가 고교 입학정원을 밑돌아 고교의 학생모집이 어려워지자 이처럼 중고교 교사들끼리 돈봉투를 주고받으며 학생을 ‘거래’하는 반교육적 행태가 성행하고 있다.

고교 비평준화 지역으로 인구가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농어촌과 중소도시에서 이뤄지는 이런 현상은 인문고와 실업고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와는 또 분위기가 달라요. 올해는 노골적입니다. (중학교에) 와서 (교사들에게) 밥 사고, 돈 달라고 합니다.”(경북 공립 실업계 고교 교사)

“일부 사립고는 중학교에 수천만원씩 뿌린다고 합니다. 갈수록 심해지니 돈 없으면 학교 운영도 못해요.”(충남 사립 인문계 고교 교장)

공립고교의 경우 교육청의 감사가 염려돼 인쇄물 제작비용 예산 등을 현금으로 빼내는 편법을 동원한다.

경남 김해의 한 고교 교사는 “특히 가정형편이 어려우면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의 담임과 학부모를 집중 매수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몇 년 전에는 경남도내 한 지역에서 교육장이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모아놓고 “학생 모집 과정에서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한 적도 있다는 것.

전남지역 사립고의 한 교사는 “상황이 좋지 않은 학교의 경우 학생 모집 때뿐만 아니라 명절이나 학교행사 때도 회식비를 건넨다”고 말했다.

강원도에서도 적지 않은 지역의 주민들이 3, 4년 전부터 ‘내 고장 학교보내기 운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입시철이 되면 비평준화 지역의 중학교 3학년 담당 교사들이 모여 아예 ‘상위 5%까지는 ○○고교’ 식으로 학생을 배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중요한’ 모임이 끝난 뒤 ‘뒤풀이’ 행사는 관내 고교들이 돌아가면서 책임을 진다.

“올해는 우리 학교 차례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조만간 있을 중학교 교사들의 비공식 입학사정이 끝나면 밤에 계산하러 나가야 합니다. 밥 먹고 술 먹고 하면 꽤 나오죠.”(경북 인문계 고교 교사)

▽원인과 교육부의 입장=“정원미달 학교라는 오명이 붙으면 끝장입니다.”

한번 정원미달 사태가 빚어지면 학교의 존립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급전직하하기 때문에 교사들이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

경남 지역의 한 교장은 “대학도 아니고 고등학교가 국민보통의무교육기관인 중학교를 매수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만, 학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한마디로 팔짱을 낀 채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곧 제정될 농어촌특별법이 발효되면 농어촌의 교육 환경이 좋아져 학생 모집난이 해소되고, 금품이 오가는 일부 지역의 현상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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