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광주 북부경찰서 형사계 사무실. 8월 광주 북구 문흥동 모 호프집 40대 여주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A씨(31·무직)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A씨는 광주 B대학 총학생회 섭외부장으로 학생 운동권을 이끌던 핵심 인물이었다.
A씨는 1997년 5월 교내에서 발생한 ‘경찰 프락치 오인 폭행치사 사건’에 연루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는 운동권 학생들이 교내에서 서성거리던 이종권씨(당시 25세·노동)를 ‘학원 프락치’로 오인하고 집단폭행해 숨지게 하자 대책회의를 주도해 이 사건을 단순 변사인 것처럼 은폐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결국 ‘무역학도’의 꿈을 접고 학교를 자퇴했다. 그 뒤 건설현장과 공장 등지를 돌며 노동일을 하다 99년 광주 하남공단 기계설비업체에서 작업 도중 왼손 집게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 뒤 일자리마저 잃었다.
그는 산재보험금 1000여만원을 받았으나 돈이 떨어지자 가출해 PC방과 찜질방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강도 행각을 벌였다.
대학 재학 시절 자주 보아왔던 호프집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그는 술집 손님들이 모두 나가고 없는 틈을 타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손으로 목을 졸라 실신시키고 흉기로 살해했다.
A씨는 이 사건 이후 부산, 대전, 경기 평택시 등 전국을 돌며 9차례에 걸쳐 부녀자들을 성폭행하고 200여만원을 빼앗은 혐의도 받고 있다.
A씨는 경찰에서 “전과기록에다 손가락까지 잘려 취직을 할 수 없어 자포자기 상태에서 범죄의 길에 빠져들었다”면서 “지난 세월이 후회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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