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과 박 전 장관은 각자 “김영완(金榮浣·해외체류 중)씨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는 취지로 말한 뒤 상대방이 김씨와 더 친하다고 주장해 한동안 설전이 이어졌다. 김씨는 박 전 장관이 현대에서 받은 돈을 세탁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박 전 장관은 “이 전 회장과 김씨가 막역한 사이라고 알고 있다”며 “김씨의 진술서에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당시 싱가포르에 갈 때 현대측의 요청으로 이 전 회장과 동행했다고 쓰여 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예비접촉 때 누구를 데려갈지는 박 전 장관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며 “박 전 장관이 김씨에게 ‘나와 함께 가면 의혹을 사게 되니 현대쪽 사람들과 함께 오라’고 지시해 김씨가 나와 같이 가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전 장관은 또 “현대의 북측 중개인인 재일동포 사업가 요시다씨가 2000년 초 한국에 와 통역과 함께 김영완, 이익치, 나, 정몽헌을 만났다”며 “이 전 회장은 자신이 고 정몽헌 회장의 심부름꾼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나 실은 처음부터 정상회담에 개입했었고 이 과정에서 김씨와도 자주 어울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전 회장은 “2000년 초 요시다씨는 한국에 온 사실도 없다”며 “출입국관리사무소 기록을 뒤져보면 알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 전 회장은 이날 법정에서 “특검 조사를 받던 마지막 날 아침 강명구(姜明求)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이 찾아와 ‘당신이 모든 일을 주도한 것처럼 진술해 달라고 정 회장이 부탁했다’고 했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 전 회장은 “이 사건에 김씨가 개입됐다는 사실은 특검 마지막날 검찰이 말을 해줘 알게 됐다”며 “정 회장과 내 진술이 달라 김씨의 존재가 드러날 경우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에게 준 비자금까지 밝혀질 것을 우려해 내게 그런 제안을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전 회장은 이날 박 전 장관의 변호인이 “정 회장의 빈소에 가지 않았을 정도로 사이가 나쁜 것 아니냐”고 묻자 “빈소에 못간 것은 말 못할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고 나중에 산소에 찾아가 많이 울었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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