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진 수매등급=16일 오후 충북 음성군 삼성면 천평리. 벼를 거둬들이던 장용환씨(67)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보다 쭉정이가 20%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평생 농사를 지어 왔지만 올해 같이 쭉정이가 많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장씨는 “잦은 비에다 태풍 ‘매미’의 피해가 겹치고 혹명나방 등 심한 병해충까지 나돌아 수확량이 예년보다 최고 40%까지 줄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날 산물벼(건조하지 않은 벼) 수매를 위해 충북 청원군 청원연합농협미곡종합처리장을 찾은 정현만씨(54)는 “50마지기의 논 가운데 10마지기를 수확했는데 쭉정이가 20∼30%에 이르다 보니 예년과 달리 특등품 판정을 받지 못하고 1, 2등품 판정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산물벼를 수매하고 있는 충북도 내 28개 미곡종합처리장의 경우 특등품과 1등품 판정이 지난해보다 1∼4%포인트 줄어든 반면 2등품과 3등품은 15% 이상 늘었다.
농협미곡종합처리장 검사원들은 “가능한 한 높은 등급을 주려고 하지만 대부분 산물벼의 제현율(벼를 도정해 현미가 되는 비율)이 특등품 기준(82%)은커녕 1등품 기준(78%)에도 못미친다”고 말했다.
경북 최대 미곡처리장인 경주 안강농협미곡종합처리장 황도석 판매과장(45)은 “지난해 40kg들이 13만가마를 도정했으나 올해는 목표치(17만가마)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다”면서 “예상보다 쭉정이가 많아 농민 소득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 이종진씨(49·충북 청원군 오창면 서부리)는 “지난해에 단보당 벼 18가마(40kg)를 생산했는데 올해는 15가마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면서 “소득이 2000만원 가까이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경호씨(41·전북 임실군 오수면)는 “벼가 익을 무렵 기온이 낮아 도열병과 잎말이나방이 특히 심해 등급도 낮고 수확량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인건비는 껑충=낮은 수매등급에 멍든 농민들은 인건비가 오른 데다 일손마저 부족해 더욱 애를 태우고 있다. 현재 벼베기 품삯은 평균 5만∼6만원 선(남자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1만원 정도 올랐지만 그나마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일이 편하고 임금이 많은 공사현장이나 수해복구현장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송재원씨(71·청원군 강내면 사인리)는 “지난해보다 품삯을 더 줘도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두 아들 내외까지 벼베기를 돕고 있다”며 “인건비, 농약값, 비료대금, 농협에서 빌린 돈 등을 빼면 손에 남는 돈은 몇 푼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목씨(59·경북 김천시 구성면 항자원리)는 “태풍 ‘매미’로 수확량이 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일손마저 부족해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며 “벼수확 후 이어질 양파 파종을 위해 인근 경남이나 충북까지 돌아다니며 일손을 구하러 다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농기계 대여료도 올라 콤바인을 빌려 200평 크기 논의 벼를 베는 데 드는 작업료가 4만2000∼4만4000원으로 지난해보다 2000∼3000원 올랐다.
▽수매자금 이자도 부담=농협미곡종합처리장들도 운영난을 걱정하고 있다. 수매량이 줄어든 데다 정부가 벼수매자금에 대해 2001년과 2002년에는 부과하지 않던 이자를 물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이자는 4%다.
충북 옥천농협미곡종합처리장 김영인 상무(47)는 “정부수매자금이 지난해보다 줄어든 데다 이자까지 내야 해 자칫 적자가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전국미곡종합처리장조합원 연합회는 정부에 수매지원자금에 대한 이자를 지난해와 같이 물리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임실=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경주=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음성=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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