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량 줄고…품삯 오르고…한숨-시름의 가을들녘

  • 입력 2003년 10월 19일 18시 16분


17일 충북 청원군 강내면 청원연합농협미곡종합처리장에서 산물벼를 가져온 한 농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벼를 살펴보고 있다. 쭉정이 벼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요즘 농촌 들녘에서는 농민의 한숨이 배어나오고 있다. -청주=장기우기자
17일 충북 청원군 강내면 청원연합농협미곡종합처리장에서 산물벼를 가져온 한 농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벼를 살펴보고 있다. 쭉정이 벼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요즘 농촌 들녘에서는 농민의 한숨이 배어나오고 있다. -청주=장기우기자
《본격적인 수확기를 맞은 농촌 들녘이 수확량 감소와 낮은 수매등급, 인력난으로 시름에 젖어 있다. 올여름 잦은 비로 일조량이 줄어들고 태풍 ‘매미’ 피해까지 겹쳐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지만 실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낮아진 수매등급=16일 오후 충북 음성군 삼성면 천평리. 벼를 거둬들이던 장용환씨(67)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보다 쭉정이가 20%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평생 농사를 지어 왔지만 올해 같이 쭉정이가 많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장씨는 “잦은 비에다 태풍 ‘매미’의 피해가 겹치고 혹명나방 등 심한 병해충까지 나돌아 수확량이 예년보다 최고 40%까지 줄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날 산물벼(건조하지 않은 벼) 수매를 위해 충북 청원군 청원연합농협미곡종합처리장을 찾은 정현만씨(54)는 “50마지기의 논 가운데 10마지기를 수확했는데 쭉정이가 20∼30%에 이르다 보니 예년과 달리 특등품 판정을 받지 못하고 1, 2등품 판정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산물벼를 수매하고 있는 충북도 내 28개 미곡종합처리장의 경우 특등품과 1등품 판정이 지난해보다 1∼4%포인트 줄어든 반면 2등품과 3등품은 15% 이상 늘었다.

농협미곡종합처리장 검사원들은 “가능한 한 높은 등급을 주려고 하지만 대부분 산물벼의 제현율(벼를 도정해 현미가 되는 비율)이 특등품 기준(82%)은커녕 1등품 기준(78%)에도 못미친다”고 말했다.

경북 최대 미곡처리장인 경주 안강농협미곡종합처리장 황도석 판매과장(45)은 “지난해 40kg들이 13만가마를 도정했으나 올해는 목표치(17만가마)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다”면서 “예상보다 쭉정이가 많아 농민 소득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 이종진씨(49·충북 청원군 오창면 서부리)는 “지난해에 단보당 벼 18가마(40kg)를 생산했는데 올해는 15가마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면서 “소득이 2000만원 가까이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경호씨(41·전북 임실군 오수면)는 “벼가 익을 무렵 기온이 낮아 도열병과 잎말이나방이 특히 심해 등급도 낮고 수확량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인건비는 껑충=낮은 수매등급에 멍든 농민들은 인건비가 오른 데다 일손마저 부족해 더욱 애를 태우고 있다. 현재 벼베기 품삯은 평균 5만∼6만원 선(남자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1만원 정도 올랐지만 그나마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일이 편하고 임금이 많은 공사현장이나 수해복구현장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송재원씨(71·청원군 강내면 사인리)는 “지난해보다 품삯을 더 줘도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두 아들 내외까지 벼베기를 돕고 있다”며 “인건비, 농약값, 비료대금, 농협에서 빌린 돈 등을 빼면 손에 남는 돈은 몇 푼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목씨(59·경북 김천시 구성면 항자원리)는 “태풍 ‘매미’로 수확량이 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일손마저 부족해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며 “벼수확 후 이어질 양파 파종을 위해 인근 경남이나 충북까지 돌아다니며 일손을 구하러 다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농기계 대여료도 올라 콤바인을 빌려 200평 크기 논의 벼를 베는 데 드는 작업료가 4만2000∼4만4000원으로 지난해보다 2000∼3000원 올랐다.

▽수매자금 이자도 부담=농협미곡종합처리장들도 운영난을 걱정하고 있다. 수매량이 줄어든 데다 정부가 벼수매자금에 대해 2001년과 2002년에는 부과하지 않던 이자를 물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이자는 4%다.

충북 옥천농협미곡종합처리장 김영인 상무(47)는 “정부수매자금이 지난해보다 줄어든 데다 이자까지 내야 해 자칫 적자가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전국미곡종합처리장조합원 연합회는 정부에 수매지원자금에 대한 이자를 지난해와 같이 물리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임실=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경주=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음성=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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