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함께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들은 하루하루 애간장을 태우고 있고 새로 지은 집과 건물을 헐값에 넘겨야 하는 사람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판교 개발계획에서 배제해 달라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 있다.
▽판교는 내 고향=“1978년 느닷없이 집을 옮기라고 하더군요.”
경부고속도로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서 5대째 살아온 김영훈(金永勳·72)씨는 갑작스러운 정부의 이주 요구에 짐을 꾸려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부고속도로 주변에 있는 낡은 한옥들이 미관상 좋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고속도로 확장과 함께 김씨처럼 고속도로 주변에 살던 21가구가 모여 판교동에 개나리마을을 만들었다. 특이한 점은 대다수 집이 남쪽이 아닌 동쪽을 향해 있다. 시에서 집과 고속도로가 마주봐야 한다며 모두 동향으로 짓도록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7, 8년 동안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지하수를 파서 생활하는 등 갖은 고생을 하며 마을을 일궜는데 또다시 이주하라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세입자를 포함해 92가구 295명이 살고 있는 개나리마을에는 판교 개발이 되면 중고교가 들어설 예정이다.
청계산 중턱에 자리 잡은 운중동 동녘마을도 개나리마을과 비슷한 시기에 형성됐다. 3000여평 대지에 모두 12가구가 있는 이곳은 생태마을로 불릴 만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멸종위기의 딱따구리가 발견되고 꿩도 사는 이곳 역시 판교 개발 대상지.
주민대표 반창모(潘昌模·53)씨는 “개발 이후에도 단독주택 부지로 활용될 바에는 주민들이 리모델링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지으랄 땐 언제고…=1997년 삼평동 560 일대(성내미마을)에 5가구가 동시에 입주했다.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서 20여년간 함께 살던 동네 친구 5명이 공동으로 전원단지를 조성한 것.
가구당 3억∼3억5000만원씩 들어갔다. 차도가 없어 120m의 도로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하대홍(河大泓·62)씨는 “전 재산을 털어 친구들과 함께 전원마을을 만들었는데 이제 뿔뿔이 헤어질 수밖에 없다”며 “주변 땅값이 평당 1000만원까지 폭등해 보상금으로는 판교 인근으로 이주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삼평동 분당종합물류센터의 서기영(徐基英·56) 대표도 “허가를 내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새 건물을 내놓으라니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1998년 2월 신축한 분당물류센터는 같은 해 9월 증축허가를 받아 지난달까지 공사를 벌이다 현재 중단한 상태. 판교개발시 이 부지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밖에 삼평동 한신교회와 영운정사 등 종교시설도 개발지구에서 배제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토지공사 관계자는 “주민들 심정은 이해되지만 종합적인 토지이용 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만큼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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