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으랏차차! 수능역전…선배5人의 '필승 쾌도난담'

  • 입력 2003년 10월 23일 16시 40분


《앞으로 12일 후인 다음달 5일, 2004학년도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67만여 수험생은 그날 자신의 12년 또는 그 이상의 학창 시절을 일단락 짓는다. 많은 수험생들이 낙망하고 좌절할 것이다. 수능이 뭐기에 그깟 일로 그러느냐는 기성세대의 충고는 냉소만 살 뿐이다.

그러나 당구장에서 패싸움 하다 파출소에 끌려갔던 고등학생이 11개월 만에 수능 성적을 125점 올렸다면, 3수 끝에 들어간 대학을 중퇴하고 해병대에 갔다 온 청년이 14개월 만에 117점을 끌어 올려 한의대에 갔다면, 고등학교를 야구 특기생으로 들어간 반 꼴등 학생이 삼수 끝에 전국 석차 0.05% 이내에 들었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이들이라면 힘없는 어린 영혼들을 달랠 여지가 있지 않을까.

19일 오전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미디어센터 19층 회의실에서는 주위의 통념을 깨고 ‘수능 역전’을 이룬 5명의 젊은이가 모여 자신들의 경험을 나눴다. 참가자는 김영태(22·서울대 법대 3학년) 김명완(27·우석대 한의대 본과 1학년) 박소정(29·경희대 한의대 졸) 김충효(24·국민대 경영학과 3학년) 이중재씨(25·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다.》

●도전이 두려웠는가, 우리

김영태=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어깨를 다쳐서 야구를 접었으니까 공부 하나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김명완=1등이란 걸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해병대 상병 때 분대장 훈련을 갔는데 식판 닦으면서 훈련교본 써 간 것 외우고 밤에 랜턴 켜고 공부했더니 1등을 하더라고요. 나도 할 수 있구나. 그때 많이 느꼈어요.

박소정=시작할 때 부담감은 제가 제일 큰 것 같네요. 11년간 했던 성악에 실패했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적으로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이 힘들었죠. 실수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실수는 고치면 된다, 더 이상 실패자로 나를 구박하기 싫다, 내가 나를 아끼는 만큼 나는 가치가 있다고 믿었어요.

김충효=성적이 안 되는 제가 고3 담임선생님 덕택에 우열반 중 우반에 들어가니까 아이들은 제가 놀러온 줄 알더라고요. 처음에 의아해 하다가 “충효가 성적을 많이 올렸나 보다”했지만 저는 속으로 ‘이제 올려야지’ 했죠. 그 시선을 받아내기가 힘들었어요.

이중재=저는 서울대반에서 거의 꼴찌였는데 우반의 혜택을 많이 봤어요. 경쟁심도 강해지고 좋은 강의를 들을 수도 있고요. 성적대로 한 칸씩 자리를 앞으로 옮기면서 ‘안 될 줄 알았는데 되네’하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충효=고1 때 영어 수학 우열반을 나눴는데 열반이었어요. 내가 왜 열반인지 짜증이 났죠. 그런데 화가 나다가도 곧 분위기에 적응이 되더라고요. ‘그래 나는 열반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냐’라고 말이죠. 이러다 안 되겠다 싶었어요.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로 나갈 수도 있었지만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떳떳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했어요.

소정=저는 기대한 만큼 충족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믿어요. 우반과 열반에 대한 선생님들의 마음가짐과 가르치는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열반은 올릴 점수를 한정 지어놓고 거기까지만 설명을 해요. 한계를 짓는 상황에 있고 싶지 않았어요.

꼴찌, 야구특기생, 해병대 등 힘들고 실망스러운 자신의 처지를 딛고 일어나 수능에서 역전을 일궈낸 주인공들. 이들은 최근 나온 책 ‘레인 메이커-수능을 뒤집은 7인’(황&리 출간)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절제 했는가, 친구

명완=1999년 여름에 제대하고 수능 공부를 하던 1년 2개월 동안 바깥세상과 인연을 완전히 끊고 술과 담배도 끊었죠. 집에서 공부하다 마지막 4개월은 독서실에서 했는데 한번 앉으면 밥 먹을 때 빼고는 안 일어났어요.

충효=고2 때 과학탐구를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학원을 갔는데 안 가느니만 못했어요. 과탐 수업 한 시간 반 들으려고 학원에 와서는 아이들끼리 뭉쳐 놀면서 6시간을 허비하는 거예요.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다면 혼자 공부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소정=학원은 제가 제일 많이 다녔네요. 수학Ⅱ는 하나도 몰랐고, 과학은 4과목을 다 들어야 했지요. 배우겠다는 초점이 분명하면 학원도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태도가 문제지요. 족집게 식 강의에만 아이들이 몰려요. 기본 개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지요. 문제를 푸는 게 아는 것은 아닌데도 자기가 안다고 착각하는 아이들이 많지요.

중재=저희 고등학교에 ‘서울대반’이 있었는데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잡담하다 시간 다 보냈지요. 거기서 외설 비디오를 처음 봤어요. 원래 교육 비디오 보라고 놔둔 VTR이었는데.

영태=야구를 접고 공부를 시작한 고1 때는 쉬는 시간에도 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급하다고 생각하니까 친구 사귈 마음도, 놀 마음도 없었어요. 쉬는 시간에 책을 보니까 아이들도 접근을 안 하더군요.

●잠이 짐이 됐는가, 그대

명완=한번은 모의고사 성적이 너무 나빠 충격받고 새벽 3시까지 했는데 9시에 일어났어요. 보통 자정쯤 자서 오전 6시경에 일어났고 오후에 졸리면 책상에 엎드려 자기도 했어요.

소정=잠이 원래 많았어요. 시험은 정확히 아느냐 모르느냐의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알 때는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머리가 멍하면 안 되지요. 피곤하다 생각하면 학원도 안 가고 잤어요. 평균 6시간 수면에 학원 갔다 와서 2시간 정도 자고 짬짬이 10분정도 잤어요.

충효=와∼. 그러니까 한 10시간 잤네요.

소정=깨어 있는 동안 집중했기 때문에 질로 따지면 안 뒤져요. 공부하다 옆 친구와 5분 떠들면 5분만 쓰인 게 아니에요. 친구 보기까지 10분, 보고 나서 책 다시 보는데 5분, 머릿속에서 냉정하게 집중할 동안 10분, 모두 30분 정도 드는 셈이죠.

충효=제가 제일 안 잤네요. 수능은 1년 남았는데 모의고사 점수는 200점이 채 안되고. ‘4당5락’이란 말을 듣고는 4시간 잤어요. 자율학습을 하고 집에 와서 누나가 녹화해준 EBS 방송 보고 나면 새벽 2시였죠. 그래도 버틴 건 운동 덕분이에요. 천재도 아니고 방법은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 밖에 없었죠.

중재=쓰러지거나 코피 터진 적 없었어요?

충효=싸우다 그런 적은 있지요.(웃음)

영태=저는 6∼7시간 정도 잔 편이예요. 대중교통 이용할 때 앉아서 자기도 했어요. 깨어 있으면 책을 봐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잠을 줄이지는 않았어요.

충효=사실 1학기 때는 많이 자다가 여름방학 지나서야 4시간 잤어요. 공부를 해도 안 되더라고요.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내세울 게 없잖아요. 저만 혼자 붕 뜬 것 같고. 그래서 술을 많이 먹게 되니까 잠을 늦게까지 잘 수밖에 없었죠.

●마음은 평온했는가, 당신

충효=마음의 안정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리 어려워도 뜻을 정한 다음에 하나씩 이뤄지다 보면 풀리는 것 같아요. 안정이 안 되니까 술 생각나고 공부는 안 되고 불안해지죠. 그래서 하나씩 체크하면서 이뤄나가는 게 중요해요.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죠.

명완=기도를 하면 안정이 됐어요. 제가 공부한 만큼만 맞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제가 수능을 4번 봤는데 그때 마다 그랬어요.

영태=하루를 돌아봤을 때 낭비한 시간이 없으면 안심이 됐어요. 그래서 1분 단위로 기록을 했어요. ‘10분 쉬는 시간에 7분 책 보고 3분 떠들었다’는 식으로. 나중에는 30분이나 1시간 단위로 적었고요. 재수 할 때 고교 3년을 돌아 봤는데 낭비된 시간이 보이더라고요. 시험도 못 봤지만 그런 나 자신을 더 용서할 수 없었어요.

소정=처음에 무리하게 서너 시간만 잘 때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 저녁에 누워서 내가 낭비를 안했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함이 사라졌어요. 스스로 부끄럼 없다는 것은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힘이 되요. 나는 이것밖에 안 되나봐 하는 생각은 없었어요. 분명히 최선을 다했지만 계획을 잘못 짰을 뿐이죠.

명완=하루에 7시간 이하로 공부하면 Ⅹ, 7시간∼14시간 하면 △, 14시간 이상 하면 ○ 식으로 2000년 1월1일부터 11월13일까지 기록했어요. 처음에는 집에 거의 혼자 있다보니 Ⅹ가 굉장히 많았고 가끔 △가 있었죠. 나중에 ○가 많아지면서 희열도 느끼고 앉아있는 시간에 최선을 다했어요.

충효=일기를 썼어요. 고3 때 EBS 보고 새벽 2시에도 썼어요. 동기부여라고 생각해요.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고 나를 다스려야 한다는 다짐 같은 거죠.

중재=저는 선승들이 수행 중에 조는 제자를 때렸다는 죽비에서 이름을 딴 ‘죽비록’을 적었어요. 6하 원칙으로 ‘왜, 언제, 어떻게, 뭘, 어디서 공부하는가’를 적었죠. 자신감이 떨어질 때마다 그걸 읽고 초심으로 돌아갔어요. 난감한 상황에 닥쳐 불안해지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기록하기도 했어요.

●에필로그

명완=힘든 해병대 생활을 9개월째 버틴 날 ‘내가 택한 길이기 때문에 버틴다. 여기서 지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지금은 해병이란 것에 자부심을 가져요.

충효=낙천적이고 좋은 친구들은 다 공부를 못했어요. 지금은 어엿한 가게도 차리고 복덕방도 하면서 대학 간 친구들보다 훨씬 절제하며 살아요. 이 친구들한테 창피하지 않게 대학 생활을 하려고 해요.

중재=긍정적인 사고방식도 교육될 수 있어요.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점수를 큰 폭으로 올린 선배가 있다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세뇌를 했죠.

소정=수능 공부가 목적이 아니었으면 해요. 수능은 길게 보면 인생에서 넘지 못할 산은 절대 아니라는 거죠.

영태=야구 시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선배들이 빨리 오라고 성화네요. 하하하.

글=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그래픽=정인성기자 71jis@donga.com

▼역전의 주인공들…어떤 사람들일까▼


(왼) 김명완, 김영태, 김충효, 박소정, 이중재

▽김명완

1976년생. 우석대 한의대 본과 1학년. 전북 전주시 영생고 재학 중 ‘소설 동의보감’을 읽고 한의사를 꿈꾸며 삼수까지 했으나 수능 271점으로 좌절.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99년 제대. 학원도 가지 않고 집에서 ‘안 되면 될 때까지’를 되뇌며 하루 15시간씩 공부. 2001년도 수능 388.5점.

▽김영태

1981년생. 서울대 법대 3학년.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신일중학교에서 메이저리거 봉중근과 선수 생활. 경기고에 야구특기생으로 입학. 고교 1학년 때 어깨를 다친 후 야구를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 반 꼴찌에서 시작해 삼수를 하는 고투 끝에 2001년도 수능 전국 석차 0.05%.

▽김충효

1979년생. 국민대 경영학과 3학년. 장충고 2학년 때 당구에 빠져 살다 패싸움 끝에 파출소에서 훈방된 뒤 부모님께 죄스러워 공부 시작. 선생님께 간절히 부탁해 모의 수능 185점 성적으로 열반에서 우반으로 진입. 하루 4시간씩 자며 11개월 공부한 뒤 98년도 수능 310점.

▽박소정

1974년생. 경희대 한의대 졸. 선화예중부터 이화여대까지 11년간 성악 공부. 대학졸업 후 문화센터에서 성악 강사를 하다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96년 한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돌입. 첫 모의고사에서 200점을 맞은 뒤 9개월 만에 97년도 수능 전국석차 0.42%.

▽이중재

1978년생.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박사 과정. 부산 대동고 ‘서울대반’ 24명 중 거의 꼴찌. 분 단위로 촘촘히 짠 시간계획과 ‘죽비록’을 작성하며 성적순 자리 배치에서 한 칸씩 앞으로 전진. 96년 4월 모의고사 300점(전국 1만등)에서 6개월 만에 97년도 수능 343.9점(전국 120등).

▼역전 주인공들이 말하는 '수능 10일 작전'▼

○교재는 꼭 봐야할 것만 남기고 다른 건 미련 없이 치워버린다=교과서나 자신이 따로 정리했던 참고서 또는 문제집 말고는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두는 것이 좋다. 따로 정리한 책이 없으면 제일 많이 봤던 참고서를 본다.

○새로운 것을 무리하게 머릿속에 밀어 넣지 말라=왠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 보지 않던 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평범한 문제는 다 맞출 수 있다고 자만해 1, 2점 더 맞추겠다고 지엽적인 것까지 넣다 보면 시험을 망친다.

○내 실력을 냉정히 판단한다=중요 과목은 목차를 훑어보면서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 문제가 나오면 이 선까지 풀면 잘한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갖는다. 내 한계를 파악하지 않은 채 실전에서 모르는 문제를 만나면 당황하게 된다.

○수능 당일처럼 습관을 맞춘다=언어 시험 시간에 언어 공부하고 외국어 시간에 외국어 공부하는 식도 괜찮다. 수능 당일 도시락을 싸간다면 비슷한 도시락을 싸서 점심에 먹는다. 수능 당일이 특별한 날이 아닌 평소와 같은 하루처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침은 꼭 먹는다=수능 첫 시간인 언어영역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는 머리가 얼마나 잘 돌아 가느냐에 있다. 배가 고파 머리 회전이 안 되면 첫 시간을 망치고 다음 시간까지 영향을 준다. 평소 아침을 먹지 않았더라도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안정을 찾는다=체력이 떨어졌다고 생각되면 잠을 늘리는 것이 낫다. 불안해지면 합격 수기나 자신이 즐겨 읽는 책 등을 읽어 마음을 가라앉힌다. 시험 당일에는 ‘잘하고 있다’고 계속 주문을 왼다. 시험이 어렵다면 ‘까짓 것, 내가 어려우면 남들은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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