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정국 어수선-공직기강 해이 심각

  • 입력 2003년 10월 24일 18시 21분


《공직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에 이은 개각설, SK비자금 정치권 유입 등으로 어수선한 정국이 이어지자 공무원들의 기강해이와 ‘복지부동(伏地不動)’, 책임전가 등의 행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정권 말기에나 나타나는 기밀 유출 사례까지 발생해 정부는 기강해이의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보고 공직기강 바로잡기에 나섰다.》

▽기강해이와 복지부동=서울 서초구 고위공무원이 22일 건설업자에게 향응을 받고 자신의 집 앞에서 500만원이 든 봉투를 받다가 정부합동점검반에 붙잡혔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사실 등 중요 사안이 잇따라 새나간 것을 ‘국가기밀 유출’로 규정하고 내부 제보자 색출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 행정자치부는 21일 8∼10급 기능직 여성 공무원 30명을 ‘해외문화탐방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일주일 동안 중국으로 여행을 보냈다. 이 때문에 행자부 8∼10급 기능직 공무원 중 3분의 1이 자리를 비웠다.

이를 두고 “최근 장관이 바뀌고, 총선 대비 업무도 산적해 있는데 직원들을 대거 해외여행 보낸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기능직 여직원들의 견문을 넓혀주자는 차원에서 올해 5월 여성공무원 워크숍에서 결정된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복지부동과 책임전가는 국민생활과 밀접한 정책 시행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

최근 부동산 가격 안정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부처간에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 건설교통부의 한 과장은 “부동산 대책은 누가 나서서 추진해도 욕을 먹게 돼 있어 다들 앞장서기를 주저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밖에 인천경제특구 외국인 병원의 내국인 진료 허용 문제, 스크린쿼터 문제 등도 부처간 이견이 대립되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북 봉화군 청량산 관광버스 사고 수습도 마찬가지. 본보 취재팀이 관광버스 단속·관리 현황에 대해 문의했으나 건교부 자동차관리과는 “단속은 경찰 책임이니 그쪽에 알아보라”며, 경찰청 교통안전과는 “도로교통법 위반만 우리 소관이고 나머지는 건교부 책임”이라며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1주일을 앞두고 있는 불법 외국인근로자 합법화 신청이 저조한 데 대해서도 노동부는 “법무부가 여전히 고용주의 신원 보증을 고집하고 있어 신청률이 저조한 것”이라며, 법무부는 “노동부가 대책 마련은 소홀히 한 채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며 서로 비난만 할 뿐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 대책=정부는 24일 국무총리실 산하의 ‘정부합동점검반’을 확대 개편해 감사원과 함께 27일부터 연말까지 집중적인 공직기강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최근 재신임 정국 이후 기강해이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합동점검반 인원을 40명에서 50명으로 늘리고 연말까지 집중적인 감찰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점검반은 이를 위해 27일부터 △총선 관련 선심 행정, 공무원의 줄서기 등 정치적 중립성 훼손 행위 △고질적 부조리 및 불법 무질서에 대한 느슨한 법 집행 행위 △무사안일 복지부동으로 인한 기강해이 등 3대 분야를 중점 점검할 예정이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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