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이회창 전 총재는 몰랐나
이 전 총재는 사건의 진상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 전 총재는 22일 서울 종로구 옥인동 자택을 찾은 홍사덕(洪思德) 원내총무에게 “최 의원에게 돈과 관련해서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 전혀 모르는 일이 터져 놀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해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김영일(金榮馹) 전 사무총장은 24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나는 당시 상황을 몰랐으며 이 전 총재에게도 그런 내용이 보고된 바 없다”며 이 전 총재의 사전 인지 가능성을 일축했다. 최 의원도 이 대목에선 김 전 총장과 한목소리를 냈다.
대선기획단장을 지낸 신경식(辛卿植) 의원은 “이 후보의 돈에 대한 결벽증도 그렇지만 당시엔 지방 유세를 다니느라 경황이 없었으므로 그런 보고를 받았을 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비록 쪼개져 살포되기는 했겠지만 100억원의 ‘뭉칫돈’이 움직였는데 이 전 총재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를 수 있었겠느냐는 의구심도 당내에선 없지 않다.
지난해 최 의원이 당 후원회 멤버인 20∼30개 기업을 상대로 모금전화를 돌린 뒤 이 전 총재로부터 ‘경고’ 메시지를 받은 사실에 비춰볼 때 이 전 총재가 어렴풋하게나마 모금 과정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崔의원 “나는 전달만”… 3자 개입 시사▼
②누가 총괄했나
최 의원은 최근 핵심당직자들에게 당의 부탁을 받고 SK비자금을 중앙당에 전달했다고 털어놨다.
최 의원이 지난해 대선 직전 당 재정국 실무자의 전화를 받고 SK로부터 100억원의 비자금을 받았으며 이 돈을 당 관계자가 보낸 ‘제3의 인물’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당시 당 지도부가 SK비자금의 수수 여부를 협의했고, 최 의원 자신은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했다는 설명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최 의원은 ‘SK측 실무자가 우리 집 주차장에 있는 내 차에다 돈을 넣고 가면 재정국 실무자가 사전에 전화로 알려준 번호판을 단 차량을 탄 어떤 사람들이 나타나 이 돈을 옮겨 실어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 의원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당시 서청원(徐淸源) 대표-김영일 사무총장 선거대책본부 집행라인에서 자금 흐름을 총괄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에 김 전 총장은 “최 의원이 맡았던 재정위원장은 돈을 모으는 게 주임무였고, 사무총장은 집행기관일 뿐”이라며 “당 차원에서 그런 자금을 모으라고 공모한 적이 없고 재정위원장이 후원금을 덜 낸 후원기업들에 돈을 더 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겠느냐”고 최 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가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 모금활동을 독려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 핵심당직자는 기자와 만나 “대선을 앞두고 당의 금고를 확인하니 30억원 정도밖에 없었는데 실제 대선자금 소요계획은 800억원에 달해 애를 먹었다”며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16개 시도지부에 ‘실탄’으로 지급된 듯▼
③어떻게 사용했나
최 의원은 “돈의 사용처는 모른다”고 했고 당 지도부도 구체적인 사용처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당에 유입된 자금은 중앙당과 16개 시도지부에 ‘선거용 실탄’으로 즉각 사용됐을 공산이 크다. 당 재정국을 점검한 최 대표의 한 측근은 “최 의원이 개인적으로 돈을 유용하지 않았고 이 전 총재에게도 돈은 흘러가지 않았다”며 “100억원의 돈이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 선거운동에 곧바로 투입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도 최근 핵심당직자들에게 “당시엔 자금 출처가 어디인지 묻고 할 겨를도, 필요도 없었다”며 “당장 선거를 치르면서 전국 지구당 말고도 중앙당의 홍보 기획파트, 직능특위 등 돈 들어갈 곳이 많았다”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도 “실탄을 달라는 지구당의 요청을 받고 현지 여건을 고려해 지역별로 차등을 두어 실탄으로 보냈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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