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자 5명의 백두대간 '고행' 20개월

  • 입력 2003년 10월 27일 15시 33분


“땡~땡~땡~

남녘 백두대간의 마지막 산, 마산 봉우리에서 녹슨 종을 두드렸다. 2003년 10월 18일 오후 3시. 이제 하산하면 장정의 끝.

발 아래 알프스 스키장 리조트와 진부령이 펼쳐져 있다. 멀리 민통선 북쪽의 향로봉도 보인다. 새들처럼 자유롭게 저 철책 너머 북녘 대간까지 갈 수 있으면...“

‘ 어때’, ‘2장’, ‘까시’, ‘엄살’, ‘엉뚱’등 다소 어색한 별명을 지닌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5명(이지훈,연제호,이상훈,홍성돈,최한규)이 백두대간의 남녘구간인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진부령까지(도상거리 640km, 실제거리 1,550km) 산길 4,000리를 마침내 주파했다. 작년 2월 지리산에서 첫발을 내디딘 뒤 꼭 20개월 만이다.

등산 경험이 별로 없는, 그것도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신문사 내근 기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다고 했을때 이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직장을 쉰다면 모를까, 근무를 하면서 장거리 산행을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였다.

그러나 이들은 한달에 두번씩 금요일이면 업무를 끝낸뒤 한밤중에 차를 몰고 출발했다. 잠을 자는듯 마는 듯 하고 다음날 새벽부터 평균 10시간, 20Km씩 걸었다. 하산후엔 콜택시를 이용해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차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돌아오면 자정을 훌쩍 넘기기 일쑤고, 다음날인 일요일엔 의레 야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처럼 고단한 산행을 이들은 왜 강행했던 것일까.

“글쎄, 그냥”

그들은 싱겁게 대답한다. 그러나 그들의 속내는 이들이 동아닷컴에 연재해온 산행기에 잘 나타나 있다..

“百酒不如一山. 백번의 술자리가 한번 산에 가는 것만 못하더군.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로부터 지치고 상처받은 짐승들. 또 반대로 그렇게 상처를 줬을 그들을 묵묵히 품어주는 산. 신성한 소도(蘇塗)가 늘 그렇듯 거기에 있었으므로”

그들은 무엇인가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가. 술로는 도저히 위로받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던가.

이제껏 숨쉴 틈 없이 몰아쳐 달려온 인생의 아스팔트, 그곳에서 문득 한걸음 비껴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잃었던 나를 찾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들은 1년8개월을 한결같이 산행에 나섰다. 이처럼 무리한 산행에 한 대원이 늑막염으로 쓰러졌다. 이 대원은 오래동안 입원했으나 병이 회복되자 다시 합류, 마무리를 함께 했다.

개인사정으로 몇몇 구간을 빠졌던 한 멤버는 혼자 ‘숙제 산행’을 하며 끊어진 대간길을 채웠다. 유난히 비가 잦았던 올 여름엔 8회 연속 비를 맞으며 산행하기도 했다.

산행중 태풍 루사를 만났을땐 처참한 오지마을 모습에 산행을 포기, 자원봉사에 나서기도 했고 허리까지 차는 폭설 속에 길을 잃고 헤맨 일도, 빙판길에 차량이 전복돼 목숨을 잃을뻔한 일도 있다.

그러나 온갖 고난과 사연 속에 종주는 1년 8개월이나 계속됐고 이제 마침내 끝이 난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충분히 위로를 받았는가. 잃어버린 자기자신들을 찾았을까.

그들은 또 그냥 웃을 뿐이다.

다만 이들은 이번 산행을 통해 각자를 후배이자 동료, 친구로서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두운 산속에 함께 들어도 결국 따로 걷게 되어 혼자가 되지만, 이 길 어딘 가엔 동료가 같이 걷고 있다는 믿음만으로도 따뜻하고 넉넉해질 수 있었다고.

대간돌이 대장 ‘어때’ 이지훈 기자는 말한다.

“길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다. 다시 시작일 뿐, 길은 길을 낳고 그 길은 또 끊임없이 닥쳐온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길은 끝없이 길을 열고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과 맞닿을 것이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 이들은 산행을 하면서 느낀 일들을 수필체, 서간체, 혹은 시조, 가사체, 무협지등 다양한 문체로 동아닷컴에 연재해왔다.

‘아! 백두대간’(http://www.donga.com/e-county/mountain/)에서 그동안의 산행기를 모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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