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비자금 수사' 한나라당 몸통 겨누나

  • 입력 2003년 10월 27일 15시 58분


'SK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이재현(李載賢) 전 한나라당 재정국장에 대한 소환 조사를 계기로 수사의 칼날이 점차 한나라당의 핵심부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 전 국장에 대한 조사 내용은 △누구의 지시로 SK비자금을 한나라당 최돈웅(崔燉雄) 의원으로부터 건네 받았는지 △후원회 모금 대책회의 논의 내용과 참석자 △다른 기업으로부터의 대선자금 모금 상황 △100억원의 사용처 등이다.

검찰 수사팀의 일차적 관심은 한나라당이 최 의원을 통해 SK에서 100억원을 받는 과정에서 공모 여부를 밝혀낸 뒤 관련자들에 대한 법률적 책임 여부와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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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SK로부터 받은 100억원의 최초 기획자와 공모자가 누구인지와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 등 당 최고위층의 지시 또는 보고 여부를 확인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이 전 국장이 지난해 10월초 중앙당 후원회를 앞두고 김영일(金榮馹) 전 사무총장 등 당 핵심중진들과 함께 모금 대책회의에 참가한 뒤 최 의원이 건넨 SK 비자금을 직접 전달받았다는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관측됐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SK 비자금 수수 과정에서 이 전 국장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없고 최 의원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SK자금을 받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당 차원의 조직적 모금 혐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불법 선거자금 모금에 대한 책임은 김 전 사무총장과 하순봉(河舜鳳) 당시 선거대책부위원장, 서청원(徐淸源) 전 선거대책위원장 등 지난해 당시 한나라당 핵심부에서 가려질 것이 유력하다.

한 관계자는 "미묘한 정국이지만 이 전 국장이나 최 의원 윗선에서 SK비자금 수수와 관련한 책임 문제가 스스로 언급되고 있어 이 수사가 거의 자동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받은 SK비자금의 규모나 최 의원의 개인적 유용 의혹 등이 이 수사를 통해 밝혀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것이 수사팀의 시각이다. 검찰 관계자가 최근 "구체적인 혐의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며 "조사가 더 진행돼야 범죄 혐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검찰은 97년 국세청을 동원한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모금 사건인 '세풍(稅風)' 수사의 전례에 따라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통해 100억원이 당에 유입됐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수사를 접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SK비자금이 한나라당에 유입된 이후 출처가 다른 자금과 뒤섞였을 경우 검찰은 범죄 혐의 입증을 위해 당분간 실무자부터 핵심 당직자까지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위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는 '돈의 성격'이 어떤 식으로 규명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SK에 대해 "나중에 잘 봐주겠다"는 취지로 자금 제공을 강요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관련자들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보다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도 적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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