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정훈/편법 부추기는 교육감선거

  • 입력 2003년 10월 28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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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가 누군지 도대체 알 수 없어요.”

국회의원 선거 유권자들의 항변이 아니다. 각 시도 교육행정을 책임지는 교육감을 뽑는 선거를 보면서 학교운영위원들이 느끼는 소감이다.

이는 2000년 3월 개정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교육감 선거운동 방식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불평이다. 규정에 따르면 두 쪽짜리 선거공보 발행과 선거구별 한 차례의 소견발표회, 개최 여부가 언론기관의 뜻에 달린 언론기관 초청 토론회가 전부다. 선거운동 기간은 불과 10일이다.

물론 이같이 엄격한 선거법이 생긴 것은 교육감 선거를 둘러싼 금품수수 등 비리의 만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격한 규정이 오히려 비리를 조장한다면 그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선거인단인 수천명의 학교운영위원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가 차단된 후보들은 편법을 동원하게 된다.

실제 경남 지역에서는 교육감 선거(12월 1일 예정)를 앞두고 후보로 거론되는 8명이 선거운동을 하다 이미 13건이 선관위에 적발됐다. 적발 건수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한 출마 예정자는 “손발을 모두 묶어 놓으면 어떻게 정책과 소신을 알리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출마 예정자는 “학맥과 인맥을 관리하면서 미리 준비한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법은 선거 결과의 왜곡을 부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 교육감이 출마할 예정인 충북 지역에서는 출마 예정자들이 “교육감이 공식행사를 내세워 운영위원과 접촉하고 있다”며 항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출발선’이 다른 불공정 경쟁이라는 것이다.

현행 교육감선거 제도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 선거와 비교해서 지나치게 후보에게 많은 제한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교육감 선거 유권자인 학교운영위원들도 불만을 터뜨린다. 경남 지역 학교운영위원 문모씨(43)는 “후보에 대한 정보가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 출마 예정자들이 학맥과 인맥 등을 이용해 운영위원을 개별 접촉하면서 타락 양상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투표권을 올바르게 행사하기 위한 충분한 정보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리나 부정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만드는 것은 좋지만 후보자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마저 알기 어렵게 되어 있다면 좋은 제도라 할 수 없다.

경남 지역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교육감 선거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그동안 여러 번 제기됐는데도 교육인적자원부가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정훈 사회1부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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