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밤새 줄서야 하는 불법 체류 근로자

  • 입력 2003년 10월 29일 18시 39분


국내에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들이 취업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에서 추위에 떨며 밤을 새우고 있다. 한 중국 동포는 “한국인들도 관공서에서 밤새 비를 맞아가며 줄을 서느냐”는 물음을 던졌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며 ‘세계 12위 경제대국’ 운운하는 나라의 공무원들이 아무리 불법 체류자라지만 외국인을 이렇게 취급하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구타나 욕설만이 인권 침해가 아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밤새 추위와 모욕감에 떨도록 했다면 이 또한 인권 침해다. 더구나 취업체류 자격 부여 업무를 맡고 있는 법무부는 인권보호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다. 모범을 보여야 할 법무부가 이러면서 무슨 권위로 일부 기업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부당 대우를 단속할 수 있을까.

현장의 한 공무원은 “잠깐 집에 들러 옷만 갈아입고 오전 6시에 출근하는 등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일손이 모자란다”고 했다. 정부다운 정부라면 이런 변명이 통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사전 절차인 노동부의 취업확인서 발급 과정에서 이미 예견됐다. 9월 초부터 취업확인서 발급이 시작됐지만 홍보 부족과 까다로운 서류 때문에 신청이 지지부진하다가 신고요건을 완화한 21일경부터 신청자가 몰렸다. 이 사실을 법무부가 몰랐을 리 없다. 모른 채 내팽개치고 있었다면 더욱 한심한 일이다.

법무부는 지금이라도 신청자들을 분산시키고 업무처리를 앞당기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기 바란다.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와 권익 침해 방지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단지 고용허가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권 침해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많은 국민이 광원 간호사 일용직 등으로 외국에 나가 힘들게 돈을 벌던 시절이 있었다. 처지가 조금 나아졌다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함부로 대한다면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대접받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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