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강명/'8학군 학생'이 무슨 죄…

  • 입력 2003년 11월 2일 18시 21분


“일류병을 고치기 위해 강남 8학군 학생을 죽이겠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모 초등학교 교장 앞으로 배달된 협박 편지의 내용이다. 다음 날에는 강남구 일원동의 한 유치원에 같은 내용의 편지가 배달됐고, 강남구 대치동의 다른 초등학교에 “음식에 독극물을 넣겠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협박범은 A4용지 2장 분량의 협박 편지에서 “지방대 공대를 졸업하고 군대에서 제대한 지 2년이 됐는데 아직 취직도 못하고 있다”며 “국회의사당과 타워팰리스를 폭파하겠다”고도 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편지 소인이 찍힌 경남 마산 지역에서 용의자를 쫓고 있다.

타워팰리스의 경우 9월 초 서울경찰청 112신고전화로 지하 헬스클럽을 폭파하겠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 와 한밤중에 폭발물 처리반이 출동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국회에는 지난달 8일 민원실로 폭파 협박 전화가 걸려 왔으며 같은 달 22일에는 서울경찰청 112지령실로 국회 폭파 협박 전화가 걸려 왔다. 이들 범인은 경찰에 붙잡혔다.

편지나 전화를 통한 협박 소동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의 협박 범죄들은 종래와는 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종래에는 돈을 요구하며 식료품 회사를 협박하거나 사회적 혼란을 기대하며 공공시설을 폭파하겠다는 내용이 흔했으나, 최근에는 편집증적인 선악 관념을 갖고 ‘악을 응징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黃相旻) 교수는 이런 협박 범죄 증가에 대해 “살기가 어려워지니 희생양을 찾는 심리”라며 “범인이 부동산 폭등의 원인은 강남에, 정치와 사회의 혼란은 국회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불만 표시가 협박범 자신을 포함해 우리 사회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자명하다.

황 교수는 “타인에 대해 공격성향을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심리적 위안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좌절을 불특정 다수에 대한 협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백번 비난받아야 할 일이다. 협박범이 진정으로 선악 관념을 갖고 있다면 봉사와 자기 헌신 등으로 사회에 기여하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협박범이 생기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는 모두가 반성해 볼 여지가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졌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살펴볼 일이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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