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이번엔 제대로 만들자]<3>콘텐츠를 바꾸자

  • 입력 2003년 11월 5일 18시 59분


창작과 전시, 공연과 축제, 주거가 함께 하는 새로운 문화신도시인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 아트밸리’의 전경. -동아일보 자료사진
창작과 전시, 공연과 축제, 주거가 함께 하는 새로운 문화신도시인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 아트밸리’의 전경. -동아일보 자료사진
《경기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의 한 건물에는 온갖 퇴폐 향락업소가 밀집해 있다. 이 건물 2층에는 퇴폐 이발소가, 그 위층은 일산 최대 규모의 룸살롱과 안마시술소를 갖춘 러브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아파트단지로부터 불과 1km가량 떨어져 있다. 일산의 중앙로를 따라 길게 형성된 상업지구에는 유흥·단란주점과 러브호텔이 무려 150여곳이나 들어서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신도시 문화의 빈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신도시가 아파트로만 가득 들어차다 보니 자연히 생겨난 현상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새로 조성되는 신도시는 주거뿐만 아니라 문화와 환경까지 고려해 주민들이 자연의 품에서 건전한 문화생활을 즐기며 살 수 있도록 꾸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프트웨어에 관심을=4월 일산신도시에 살고 있는 영화감독 여균동씨와 작가 김형경씨 등 문화예술인 60명은 ‘문화도시 고양을 생각하는 예술가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창립선언문에서 “일산을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생산하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예술인들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 감독은 “자동차로 움직이는 지역에서는 생산적 문화가 자리 잡을 여력이 없다”며 “신도시가 소비향락문화에 찌들고 있는 것은 문화콘텐츠를 생각하지 않는 설계의 잘못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년 3월 분양에 들어가는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는 국내 처음으로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도시 전체에 40여km에 이르는 자전거도로를 만들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 도로가 단순한 이동로의 역할뿐만 아니라 주민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도시에 문화의 향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7년 김언호(金彦鎬) 한길사 대표의 제안으로 각계 문화예술인 370여명이 경기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 내 15만평의 땅을 매입해 건설 중인 ‘헤이리 문화마을’은 신도시 문화콘텐츠의 또 다른 실험.

창작과 전시, 공연과 축제, 주거가 함께 하는 이곳에는 2005년까지 미술관과 음악실, 박물관 등 360여채의 건물이 들어서고 500여명의 문화예술인이 상주할 예정이다.

이 마을의 이상(李相) 사무총장은 “파주시만이라도 헤이리 마을이나 출판산업단지 등과 연계된 문화 신도시가 돼야 한다”며 “문화 신도시는 지방자치단체가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도시 어디에서나 예술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지금까지의 신도시 설계는 주거용지와 근린생활시설, 상업 및 업무용 시설을 우선 배치하고 남은 토지를 녹지나 공원으로 보존하는 게 주된 방식이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현수(金賢洙) 수석연구원은 “앞으로의 공간 계획은 환경에 대한 고려가 1순위가 돼야 한다”며 “자연 및 경관 보호와 휴식공간 확보가 우선시되고 도시설계는 이에 맞춰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삶의 질을 위해서는 동식물의 서식 보호나 이동로 확보 등 자연환경만 감안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 통로나 지하수위 등 새로운 환경지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

서울여대 도시기후연구센터 송영배(宋永培) 교수는 “독일의 도시는 쾌적한 대기환경을 위해 바람이 지나다니는 통로를 건물이 막지 않도록 설계한다”며 “지금까지의 신도시 건설에는 이런 환경지표는 한번도 포함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지하수위가 높은 지역엔 고층건물과 오염배출시설을 배치하지 않도록 지하수위 조사도 필수라는 것.

송 교수는 지난해 8월부터 국내 신도시 개발 사상 처음으로 판교 일대의 바람 통로를 조사해 바람의 주요 통과지역에 친수공간이나 산책로를 조성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토지공사는 판교 개발계획 수립시 이 연구결과를 활용할 계획이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이렇게 달라질수 있다 / 죽전지구 설계변경 해보니▼

현재 신도시의 녹지공간은 전체 면적의 20% 안팎이다. 일산(경기 고양시)이 23.7%로 비교적 높은 반면 중동(경기 부천시)과 평촌(경기 안양시), 산본(경기 군포시)은 15%가 채 되지 않는다.

내년 6월 입주가 시작되는 경기 용인시의 죽전택지지구는 어떨까. 108만평의 부지 가운데 1차 공사지역인 40만평에서 차지하는 공원공간은 19.3%로 신도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건설교통부의 의뢰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3년간에 걸쳐 죽전택지지구를 생태 중심의 환경친화적 도시를 목표로 가상설계한 결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나왔다.

생태중심의 설계안은 녹지대가 단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로와 맞닿은 지역이나 야산을 모두 근린공원으로 보존했다. 또 홍수를 예방하고 습지를 확보하기 위해 두 갈래로 나뉘는 하천도 그대로 두었다.

현재의 설계안은 도로 부근에도 아파트나 단독주택이 들어서고 동북쪽으로 뻗은 하천을 복개해 도로 및 아파트 부지로 활용하도록 돼있다.

또 도로가 녹지를 침범하지 않도록 한 것이 특징. 동서를 잇는 관통도로 중앙 부분과 관통도로를 빙 두르는 원형도로 북쪽 부분의 녹지대도 그대로 살려 두었다. 대신 도로는 녹지대 밑으로 지나가도록 했다.

이처럼 녹지와 하천 중심으로 도시설계를 한 결과 공원녹지비율은 19.3%에서 55.1%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주택용지비율은 47.3%에서 29.8%로 뚝 떨어졌다. 또 녹지가 끊어지지 않아 생물의 서식과 이동공간이 확보됐다.

연구원은 이렇게 되면 주민들의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공원녹지비율을 45%로 약간 낮추고 주거지역을 고밀도로 설계하면 계획인구(2만3700명)와 비슷한 2만명까지 수용이 가능해 경제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용인=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