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이번 사태는 정부가 ‘부안 주민들을 파격적으로 지원하면 설득이 가능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안군 위도가 방폐장 후보지로 지정된 직후인 7월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이 “주민들에 대한 현금지원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가 이를 노무현 대통령이 하루 만에 뒤집으면서 주민 불신의 씨앗을 제공했다.
이후 대결양상으로 치닫던 정부와 ‘핵폐기장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는 한 달 전부터 ‘대화기구’를 만들어 사태해결을 모색했다. 그러나 “방폐장 부지의 위도 선정을 백지화한 뒤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대책위측의 요구를 정부가 거부해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이에 대화기구에 참여한 최병모 변호사가 연내 주민투표 실시를 제안했고, 대책위가 내부 격론 끝에 16일 이를 수용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되는 듯했다.
공을 넘겨받은 정부는 시기와 법제정 문제 등을 이유로 연내 실시 제안을 거부했고, 화가 난 부안 주민들은 17일과 19일 부안의 예술회관과 보건소 등 관공서에 화염병을 던지고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등 격렬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고건 국무총리는 19일 “정부와 주민들이 합의만 한다면 연내에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밝혔으나, 다음날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주민투표를 위해서는 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며 연내 불가 입장을 밝히는 등 정부 방침이 오락가락했다. 주민들은 연내 주민 투표가 거부되자 “정부가 대화를 핑계로 시간 끌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됐고 이에 따라 “더 이상 정부를 믿을 수 없고 강경 투쟁밖에 없다”는 강경론이 힘을 얻게 됐다.
▽전망=경찰이 집회를 원천 봉쇄함에 따라 당분간 대규모 집회는 불가능한 대신 산발적 시위와 공공건물 방화 등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대책위 모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절망감을 느낀 주민들이 분신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상황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정부가 엄청난 공권력을 동원해 주민들을 압박할 경우 일부 과격한 주민들이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부안 전체가 민란 수준으로 빠져 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정부 일각과 대책위 일부에서 사태의 조기해결을 위해 내년 초 주민투표 실시 방안에 적극 반대하지 않고 있어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막후 접촉이 이뤄질 경우 주민투표가 조기에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안=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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