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다니는 특수목적고 입시학원은 학원비가 월 60만원이 넘었다. 아들도 과목당 10만원씩 하는 영어 수학 논술 단과학원을 다녔다. 250만원 남짓한 남편 월급으로 100만원이 넘는 과외비를 대다보니 생활비도 빠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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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사교육의 폐해 ①무너지는 公교육 |
A씨는 올해 둘째가 중학교에 진학하자 과외비 때문에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했지만 빚을 갚을 길이 막막했다. 다단계 화장품 영업사원, 이벤트용 풍선장식, 인형 눈썹 붙이기 등 부업에 나섰지만 월 50만원 이상 벌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주일에 두 번만 일하면 한달에 1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노래방 주부 도우미’로 나섰다가 남편에게 들통이 난 것이다.
▽사교육비의 굴레=한국교육개발원이 올해 9, 10월 전국 학부모 1만2462명을 조사한 결과 ‘사교육비 지출이 가계에 부담이 된다’고 응답한 사람이 83.5%나 됐다. 25.5%가 ‘매우 부담이 된다’고 대답했으며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학부모는 1.3%에 불과했다.
초등생 학부모의 85.3%, 중학생 학부모의 84%, 일반고 학부모의 79.8%가 사교육비로 인해 가계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통계청이 24일 발표한 ‘3분기 도시근로자 가계수지 동향’에서도 사교육비는 지난해 같은 기간 9만원에서 12만5000원으로 38.9%나 증가했다. 올해 1·4∼3·4분기 평균증가율 역시 40.1%나 된다.
대도시지역에서는 주부들이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부업전선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채용정보업체 인크루트에 따르면 올해 1∼3월 구직을 신청한 주부는 2만7000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가량 늘었다. 일반구직자 증가율 16%의 2배나 되는 수치다. 생활정보지나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 게시판에는 ‘과외비 필요하신 주부님들 환영’ ‘2차 없음’ 등의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주부들을 유흥주점의 ‘술시중 도우미’나 ‘성인전화 교환원’으로 모집하는 광고다.
▽낮아지는 삶의 질=사교육비가 늘어나면서 생활수준이 턱없이 낮아지고 노후대책 마련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초등 6학년, 고교 1학년 자녀를 둔 B씨(44·서울 송파구 오금동)는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자 10년 만에 다시 일자리를 찾았다. 처음에는 대학 구내식당에서 일하다가 얼마 전 대리운전사로 직종을 바꾸었다. 주4회 근무, 월 150만원을 버는 B씨는 이 돈의 절반 이상을 대출금 상환에 쓴다. 지난해 9월 큰아들을 미국에 고교 교환학생으로 보내면서 모자라는 경비 500만원을 대출받았기 때문이다. B씨는 ‘노후보장보험’이나 ‘장기적금’도 모두 해약한 채 자녀 교육비에만 투자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가정형편을 무시한 과잉 교육투자인 셈이다.
B씨는 “가족들의 식사준비나 세탁, 청소 등 집안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며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는 참고 살자고 했지만 초등생인 딸도, 남편도 투정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40대 전후의 주부들이 과외비를 ‘발등의 불’로 인식한 나머지 ‘돈 되는 일이면 스스럼없이 뛰어드는’ 추세를 우려하고 있다.
김종숙(金宗淑) 여성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20대 여성이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30대에 육아를 마친 뒤 40대에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아무 계획 없이 노동시장에 다시 나온다”며 “이들은 단순노무직 등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과외 쇼핑 중독증 심각=일부 주부는 쇼핑중독증처럼 ‘과외 사치’를 부려 스스로 과외비의 덫에 더 깊숙이 빠져들고 이로 인해 남편과 불화를 빚기도 한다. 중학교 3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 C씨(47·서울 서초구 잠원동)는 “20만원짜리 과외는 200만원짜리에게 지게 마련”이라며 “부단히 다른 학부모들의 동향을 살펴야 한다는 것 또한 큰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는 “백화점에서 비싼 상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자녀 교육에 투자했다는 자기만족을 얻기 위해 자녀에게 고액과외를 시키는 부모들도 있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영유아 과외비 한달 250만원…입시생 뺨친다▼
최근 한 자녀 가정이 늘어나면서 영유아 시절부터 사교육에 많은 비용을 들이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
40, 50대가 자녀의 대입 준비에 들이는 수준의 비용을 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고교 교사인 부인과 맞벌이를 하는 대기업 연구원 손모씨(34·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부부 합산 월수입은 450만원가량. 손씨 부부는 다섯살배기 딸의 양육비와 교육비로 월수입의 절반이 넘는 250만원을 쓴다.
하루 종일 아이를 봐주고 집안일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130만원을 주고 영어유치원(68만원), 가정방문 미술교실(15만원), 일주일에 두 번 다니는 창의력 놀이학교(15만원) 등 돈이 들어간다. 또 ‘엄마랑 함께하는 찰흙놀이’ 등 별도의 학습 자료와 비정기적인 심리검사, 지능검사, 부모동반 캠프, 장난감 구입비와 간식비 등을 합치면 월평균 20만원 이상이 추가로 든다.
서울과 경기 분당, 일산, 용인 등 신도시에 넘쳐나는 이른바 ‘영어유치원’은 월 40만∼80만원의 수강료를 받는다. 심지어 영어를 제2외국어로 사용하는 러시아인들을 채용한 영어유치원도 인기를 끌 정도다.
6세 전후 유아의 경우 유치원 외에 태권도, 피아노, 무용, 수리(도형교실 포함), 미술학원, 국어 혹은 한자 학습지, 독서(논술)교실, 영어 개인과외 가운데 2, 3가지를 배우는 아이들이 많다.
수강료는 보통 한 과목에 7만∼15만원. 부유층 지역을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영어 원어민 방문과외는 회당 10만원씩 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몸매를 예쁘게 잡아준다는 이유로 만 4, 5세 유아들이 무용을 배우기도 한다. 미술, 도형교실은 지도교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해 함께 실험하고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이 창의력을 키워준다고 해서 인기가 높다.
또 조기유학에 대비해 골프 수상스키 승마 하키 등 외국 학생들이 즐기는 레포츠를 미리 가르쳐 주는 멤버십 체육교실은 1년에 200만원이 넘는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3년 현재 국내 가정에서 자녀 1명을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비용은 월 82만5000원으로, 이 가운데 교육비(30만6000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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