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TV 뉴스의 클로징 멘트가 끝났는데도 대학생 딸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문용린 교수(56·서울대 교육학과)는 책을 들여다보면서도 딸 걱정에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건성으로 책장을 뒤적이던 문 교수는 급기야 전화기를 집어 든다.
“어디야? 아니,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안 들어와?”
전화번호를 누를 때만 해도 ‘매일 늦는 것도 아니니 좋은 말로 잘 타일러야지’하고 다짐했건만 또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문 교수는 “밖은 캄캄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 딸의 목소리를 수화기 너머로만 듣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불안해진다. 딸 가진 부모들은 다 같은 심정일 것”이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불과 3년 전 한국의 청소년, 교육문제를 총지휘하던 교육부 장관이었지만, 이럴 땐 딸의 귀갓길을 걱정하며 조바심을 내는 여느 평범한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 단,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집에서 속을 끓이며 앉아 있지만은 않는다는 것. 그는 요즘 2, 3일에 한번씩 춥고 인적이 끊긴 밤거리에서 순찰을 돈다. 교육학자이자 전 교육부 장관인 그가 한밤중에 곤봉을 들게 된 사연은 뭘까.
○ 밤 10시반:교수들, 곤봉을 들다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6일 밤. 문 교수를 따라 도착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1동의 성당 앞.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성당 사무실에서 타격용 곤봉이 달린 허리띠, 야광 띠가 부착된 순찰조끼를 주섬주섬 꺼내 입었다.
모두 41명으로 구성된 이들 주민자치 방범순찰대원들은 같은 동네 성당을 다니는 지역 주민들. 6월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 내에서 여대생이 납치되는 등 강남을 ‘표적’으로 한 사건사고가 빈번할 즈음 문 교수는 자원봉사 순찰대 모집을 제안했다.
문 교수는 “강남에서도 압구정동이 범죄의 표적이 되고, 가까운 이웃들이 잇단 강력사건으로 피해를 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우리 딸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도록 뭔가를 하자는 소박한 취지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의 제안에 같은 동네에 사는 김용성(44·국민대 건축학과), 소영성 교수(47·명지대 정보공학과) 등이 선뜻 호응하면서 구체적인 활동계획이 서기 시작했고 30여명의 성당 신자들이 가담하면서 8월에 ‘엠마오 봉사대’가 정식 출범했다. 이 가운데 대학교수는 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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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대장인 김 교수는 “강단에서야 거리낄 것이 없지만 ‘비전공’ 분야인 방범순찰대원으로 나서니 처음엔 어디서, 어떻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막상 ‘사건 현장’에 부닥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길거리의 아이들이 ‘뭔데 참견이냐’며 되레 반발하면 뭐라고 해야 하나, 모든 게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넉 달이 지나자 제법 관록이 붙었다. 주거지역에 따라 6개조로 나누고 요일별로 당번을 정해 밤 10시반경부터 자정까지 순찰을 돈다. 함께 다니는 인원이 3명 이상 되지 않으면 순찰을 돌지 않도록 원칙도 세웠다.
인원이 너무 적으면 어두운 골목길에서 되레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원미달로 순찰을 ‘건너 뛴’ 날은 하루도 없다.
대부분 예비군 훈련을 마친 지 10년이 넘었지만, 곤봉을 소총 다루듯 움켜쥐고 9V 대형 플래시와 경광봉, 호루라기까지 ‘완전 무장’을 한 뒤 ‘밤의 출정’에 나섰다.
○ 밤 11시 05분:칠흙같은 골목길
“어, 이 집 또 대문 열어놨네.”
주택가 골목 어귀를 플래시로 비추던 소영성 교수가 한 집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같이 순찰을 돌던 한 대원이 핸드폰을 꺼내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이들의 핸드폰에는 신사파출소, 압구정1동 치안센터, 동사무소 등의 비상연락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번화가를 지나 들어선 주택 골목길은 상당히 어두웠다. 앞길 번화가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소 교수는 “가끔 불 꺼진 빈 집이나 대문이 열린 집을 지나치다 보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9월 노부부 살해 사건이 났던 집 앞을 지날 때면 아직도 모골이 송연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대원들은 구석구석을 플래시로 비추며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봉사대원들은 매일 동선을 달리해 순찰을 돈다.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다.
순찰구역은 동호대교 남단에서부터 성수대교 남단에 이르는 현대아파트 단지와 도산공원 앞 사거리에서 안세병원 사거리에 이르는 신사동 주택구역 등 두 블록. 2.5km²의 면적에 7500여 세대, 2만여 명이 사는, 작지 않은 구역이다. 대로 안쪽의 골목들을 중심으로 압구정로 좌우 두 블록의 모든 골목들을 거의 다 돌아다닌다.
주택가 골목길을 돌아 어둑한 아파트 사잇길로 접어들 즈음, 순찰대원인 김영진 교수(45·경기대 신소재공학과)가 혼자 걸어가던 한 여학생에게 “학생, 밝은 쪽으로 다니는 게 좋겠어요”하고 말을 건넸다. 여학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김교수를 흘끗 쳐다보더니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머쓱해진 김교수는 “사실, 조심하라고 말해야 하는 현실이 더 안타깝다”며 여학생이 가는 길 쪽으로 플래시를 한참동안 비춰주었다.
대원들은 얼마 전 아파트 단지 옆 길가에서 한 여대생이 만취한 채 쓰러져 있던 것을 발견하고 집까지 바래다준 적도 있다. 올 봄 여대생 납치사건이 발생했던 바로 그 곳이었다. 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절대로 제2, 제3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긴장감을 늦추는 일이 없다. 사실 소영성 교수는 중학교 1학년, 6살 짜리 두 아들만 두고 있어 아직 크게 밤길 걱정할 일은 없다. 그런데도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묻자, “내 아이 뿐 아니라 내 제자도 소중하다”며 “안심하고 자식을 키우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을 모아, 보이지 않는 범죄자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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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11시 37분:곤봉을 놓고…
이날 순찰은 별다른 사고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대원들의 얼굴에서 긴장이 서서히 풀려가는 분위기다. 한 대원은 자신을 따라 나온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순찰을 돌며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대화도 나누었다. 그는 요즘 한창 화제로 떠오른 연예인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는 그것도 몰라요?”하는 핀잔을 듣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대원들 가족들은 처음엔 “낮에 하루 종일 일하느라 피곤할 텐데 왜 사서 고생이냐”면서 만류했지만 요즘에는 많이 달라졌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나온다는 박상현씨(43·개인사업)는 “퇴근이 좀 늦으면 아내가 전화를 걸어와 ‘방범순찰 안 나가느냐’고 독촉할 지경”이라며 “스스로의 생활에서도 절제를 하게 된다”고 흡족해 했다.
배정된 요일에 관계없이 매일 참여해 별명이 ‘전국구’인 배창희씨(46·의사)도 “하루 순찰을 마치고 나면 1만보를 걷는 효과가 있어 가족과 주위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부인이나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등 가족 모임으로까지 확대됐다. 대원들은 이웃끼리 자주 만나게 되고, 미처 몰랐던 동네의 골목골목 지형과 점포들을 속속들이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자평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올해 재편된 경찰의 순찰지구대 중심의 체제가 생활 치안 공백을 가져오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동네에 한 명씩 있던 파출소 경찰이 없어진 바람에 긴급상황이 발생해도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 대원들은 그간의 활동내용을 정리해 구청, 시청 및 경찰 등에게 개선요구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문용린 교수는 “주민 자율방범순찰 활동은 선진국에선 자연스러운 활동”이라며 “자율방범활동이 확산돼 이웃간의 벽도 허물고 지역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 모든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곤봉을 아주 내려놓아도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작은 노력이 쌓여 언젠가는 순찰이 아니라, 가벼운 산책만 해도 좋을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곤봉을 든 대원들은 오늘 밤도 어김없이 추운 밤거리로 나선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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