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엔…]동아일보로 본 12월 셋째주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8시 22분


코멘트
▲京電이 국가관리회사로서 정부를 대행하여 기업체나 민간에 공정한 전력을 배정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요… 그 의무를 다해주도록 수천명의 종업원과 상당한 보수를 지출하고 있는데… 요즘 같은 사정을 보면 일반 가정에 하루에 불과 二, 三시간밖에 주지 않고 또 二, 三시간 주는 전등불조차 가정에서 필요치도 않는 시간에만 주고 료금은 배(倍)로 올려 꼬박꼬박 받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발전량이 충족치 못하여 만족한 배전량을 바라는 배는 아니다… 힘없는 가정 전기 사정에 반하여 고관, 세도가, 그리고 그들 경전회사 직원들 집에는 낮이고 밤이고 불야성을 이루고 있으니 이 어찌 고언이 없을 수 있으랴…

<1953년 12월 15일자 동아일보 ‘휴지통’에서>

▼전력난 극심…세도가에 '우선공급' 특혜

동아일보 1955년 2월 17일자 ‘고바우 영감’. 6·25전쟁 직후 극심한 전력난으로 서민들은 하루 2∼3시간 전등불을 켜기 위해 20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하루 종일 펑펑 전기를 쓰는 특권층에 대한 힐난이 이 만화의 배경에 깔려 있다.

광복 당시 한반도 내 전력시설용량(시간당 172만2700kW)의 약 90%를 보유하고 있던 북한은 1948년 5월 14일 남한에 대한 전기 공급을 전격 중단했다. 그런 상황에 6·25전쟁까지 겪었으니 전후의 전기 사정이 오죽했겠는가. 서울의 경우 당인리 발전소가 2만4000kW/h를, 미국이 발전함정 4척을 원조해 대당 2500kW/h의 비상전력을 각각 공급했지만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경전’은 서울 일원에 전기를 공급하던 ‘경선전기’의 약칭으로, 당시 남한에는 경전과 남선전기, 조선전업 등 3개 국영 전력회사가 있었다(이들은 61년 한국전력으로 통합됐다).

공급이 절대부족이다 보니 독점업체였던 이들 전력회사의 위세는 대단했다. ‘5·14 단전 조치’ 이후 제한된 전력을 산업시설과 공공기관에 우선 공급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특선(特線)제’를 빙자해 고관, 세도가 및 전력회사 직원 등에게 특혜를 주는 일이 빈번했다.

일몰(日沒) 무렵부터 고작 2, 3시간 전기를 쓰던 서민들로선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쌀 한 가마니가 48환40전이던 당시, 한 달 기본료 40환에 100W 백열등 1개에 5환90전, 라디오 1대에 10환, 다리미 1개에 150환 등 전기용품별로 정액이 추가되는 고가의 요금제 역시 원성을 샀다.

53년 12만kW/h에 불과하던 남한의 전력시설용량은 2003년 5600만kW/h가 되었으니 460배 이상 신장한 셈. 그에 반해 쌀 한 가마니의 도매가가 16만원인 요즘 TV에 냉장고까지 갖춘 요즘 일반가정의 월평균 전기요금은 2만5000원선. 우리는 반세기 전에 비해 전기의 소중함을 너무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