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아들-며느리가 때리고…학대받는 노인이 는다

  • 입력 2003년 12월 15일 18시 41분


정모씨(75·여)는 최근 택시운전사에 이끌려 대구 동구의 한 파출소를 찾아야 했다.

첫째 며느리가 둘째아들의 집으로 가라며 정씨를 택시에 태운 뒤 손에 쥐어준 쪽지의 주소가 잘못돼 택시운전사가 둘째 아들의 집을 제대로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자녀들(3남3녀)의 ‘합의’에 의해 두 달씩 돌아가며 아들과 딸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하는 정씨는 “짐짝처럼 내돌리며 며느리 등으로부터 구박받는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하다”고 말했다.

대구 달서구에 거주하는 박모씨(71·여)는 3년 전 남편이 숨지자 작은 아들에게 함께 산다는 조건으로 갖고 있던 돈 3000만원을 모두 주었다.

그러나 함께 살면서부터 시작된 며느리의 구박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올 들어 작은 아들의 수입마저 줄자 며느리가 화가 날 때마다 욕설을 하고 폭력까지 휘둘러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됐다.

김씨는 두 아들 중 큰 아들이 “돈벌러 간다”며 나간 뒤 연락이 끊긴지 오래된 데다 수중에 돈도 없고 달리 의지할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계속되는 학대 속에서 작은 아들의 집에 머물고 있다.

올 들어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이처럼 노인들이 가족들로부터 구박받거나 신체적 구타, 학대 등을 당하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노인학대상담센터 대구·경북지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상담실적은 총 264건으로 상반기에는 월평균 19건이었으나 하반기에는 30건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신체적 구타 및 방임으로 응급대처를 요하는 사례가 236건이었고 노인학대로 판정된 것이 181건이나 됐다.

가해자를 보면 아들 내외가 74.6%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그 다음으로 배우자(10.3%),딸, 손자 또는 손녀 순이었다.

학대받는 노인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지난달 27일 노인학대를 한 사람에게 최고 징역 5년을 구형하는 내용의 노인복지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를 통과하기도 했다.

노인학대상담센터 관계자는 “상당수 노인들이 젊었을 때 자식에게 잘 못했기 때문에 학대받는다는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다”며 “노인학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인전용 쉼터를 개설하고 국가 차원에서 가족의 부양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최성진기자 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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