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대선자금 11억40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14일 밤 구속 수감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비서실 정무팀장)씨가 구속 직전 지인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담은 이메일을 보내 관심을 끌고 있다.
안씨는 14일 발송한 이메일 ‘세 번째 그 자리(검찰청의 포토라인:편집자 주)에 서게 되면서’에서 자신이 그동안 느낀 정치와 대선과정,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비교적 진솔하게 써내려가 이날 구속을 어느 정도 예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메일 서두에서 “대통령을 뽑아 놓은지 1년이 넘도록 ‘대통령을 인정 하네, 못 하네’하는 식의 싸움으로 국정의 발목을 잡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고 노 대통령을 걱정하면서 “정치가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 국민은 정치가에게 권력을 맡기고 존경을 보내줘야 하고 그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 유지비용을 지출해야 한다”고 색다른 주장을 펼쳤다.
그는 이어 “정치가 국민 모두의 이익보다는 일부 정치인들과 소수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위해왔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고 정치비용을 내지 않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정치인들을 불법 정치자금의 유혹에 빠뜨려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 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고교시절 동족을 죽이는 군사정권을 보면서 이 세상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20세기 모든 변혁운동이 실패로 끝나는 현실에서 깊이 좌절했다”면서 “책임감을 갖고 정치권에 들어와 지금 집권세력의 측근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허명을 알렸으나 국민의 눈에는 부패하고 타락해 보일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불법대선자금 수수와 관련, ‘진흙탕 속을 헤쳐 나온 바짓가랑이’를 예로 들며 간접 시인한 뒤 “국민들이 우리에게 기대했을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무겁고 가슴이 아프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한때 자신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고 만류해 몇 달을 고민했다’고 밝힌 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논쟁처럼 국민의 불신과 정치인의 타락은 선후를 따지기 어려우나, 정치인과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만한 도덕적 권위를 확보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임은 명백하다”고 밝혀 자신이 고민 끝에 정치적 명분을 찾았음을 밝혔다.
그는 그러나 최근의 심경에 대해 “지금 저는 제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데 예전의 길로 갈지, 새 길로 갈지, 그냥 이대로 이 갈림길에서 서성여야 할지… 멍하니 서있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어 심하게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