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예금 인출시 은행이 본인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금융실명제법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통장, 비밀번호, 도장을 제출하면 예금을 지급해주는 기존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어서 상급심의 판결이 주목된다.
서울지법 민사항소10부(최동식·崔東軾 부장판사)는 17일 이모씨(80)가 “내가 사망한 여동생의 유일한 상속인인데도 은행 창구 직원이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상속권이 없는 여동생의 의붓아들에게 예금을 지급했다”며 C은행을 상대로 낸 예금반환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1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C은행은 사망한 이씨 여동생의 의붓아들 김모씨가 이씨 여동생 명의의 예금을 인출할 때 통장, 비밀번호, 도장이 동일하고 여동생과 김씨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김씨가 위임장을 받았는지 등을 알아보지 않았으므로 배상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C은행은 예금지급 청구서의 인감과 비밀번호가 동일하면 도용·위조·변조에 따른 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약관을 근거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나 1000여만원이나 되는 금액을 예금주의 확인도 없이 지급한 것은 피고의 부주의 정도가 심해 이 조항을 적용받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원고 이씨는 여동생이 1997년 7월 사망한 후 여동생에 대한 유일한 상속권을 획득했으나 상속권이 없는 김씨가 그해 8월 “어머니를 대신해 돈을 찾으러 왔다”며 C은행에서 예금을 해약하고 돈을 인출하자 은행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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