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김영호/파지수집 노인의 '양심'

  • 입력 2003년 12월 18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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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추운 날씨만큼이나 썰렁한 국내 경제로 인해 요즘 길거리에 실업자나 노숙자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부양자가 없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상황은 더욱 어렵다. 그런 노인 중에는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파지를 수집하는 분들도 있다.

소규모 가구점을 운영하는 필자는 몇 년 전부터 버릇이 하나 생겼다. 여기저기서 파지를 모아 판 돈으로 생계도 꾸려나가고 자원 재활용도 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돼야겠다는 생각에 가구를 배달하고 난 뒤 생기는 빈 종이상자를 트럭 짐칸에 모아 두고 퇴근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필요 없는 것일지라도 누구에겐가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얼마 전의 일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게 문을 열다 무심코 트럭을 보니 짐칸에 거울이 든 상자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날 저녁 공장에서 가져온 가구를 정리할 때 거울이 들어있는 상자를 빈상자로 착각하고 다른 빈 상자들과 함께 트럭 짐칸에 올려놓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 트럭에서 빈 상자를 가져가는 분은 그 거울 상자는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다. 거울 값이 싸고 비싸고의 문제가 아니다. 파지를 수집하는 분은 분명 살림이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빈 상자 외의 물건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정직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그분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모든 사람이 이익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어려워도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가외의 욕심을 내지 않는 그런 분들이 내 주변에도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있는 사람은 정직하다’라는 지론을 갖고 살고 있다. 정직하면 ‘재산의 부’를 누릴 수는 없어도 ‘마음의 부’는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파지를 좀 더 열심히 모아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파지를 수집하는 그분에게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보내며 그분께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서울 서초구 잠원동

김영호 서울 서초구 잠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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