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군 대덕면 만덕산 자락에서 명맥이 끊긴 지 오래인 밀랍초를 만들며 살고 있는 독일인 디르크 휜들링(50), 한국인 이영희씨(45) 부부.
휜들링씨 부부는 2001년 국도에서 벗어나 산길을 따라 자동차로 5분여를 더 올라가야 하는 외딴 산골짜기에 집을 지었다.
휜들링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약 30년 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휜들링씨는 1974년 서울대로 유학와 한국학을 전공한 뒤 독일 보흠대학에서 ‘한국의 의성·의태어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한국으로 다시 건너온 그는 대구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에서 독문학을 가르치다 1992년부터 8년 동안 독일대사관에서 통역관으로 일했다. 이때 이씨를 만나 결혼했다. 이씨는 ‘문명의 공존’ ‘휴머니즘 동물학’ 등 수십권의 독일서적을 한국어로 옮긴 전문 번역가.
이들 부부는 서울에 살면서 담양군 대덕면에 있는 친구 집에 자주 놀러왔다가 산 높고 물 맑은 경관에 반해 아예 이 곳에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휜들링씨는 우연한 기회에 양봉을 하는 인근 주민들이 꿀을 내린 뒤 벌집을 그냥 버리는 것을 보고 독일의 밀랍초를 떠올렸다. 독일에서 벌을 키우는 사람들이 벌집을 녹여 초를 만들어 판매하고 일부 가정에서도 크리스마스 때 이같은 방법으로 초를 만들고 있는 점에 착안, 본격적으로 밀랍초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는 개화기 때 양초가 들어오면서 신라시대부터 전해내려오던 한국의 밀랍초 명맥이 끊겼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관련서적을 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부족해 독일로 직접 건너가 며칠간 노하우를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집 건너편에 10여평의 작업실을 차린 이들 부부는 올 3월부터 한달에 1000개 정도를 만들어 찻집 등에 판매하고 나머지는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담양이 대나무의 고장인 점을 감안해 대나무통에 심지를 꽂고 촛물을 부은 일명 ‘대나무 초’를 만들어 담양읍 죽물박물관에 전시하기도 했다.
그을음이 없고 향이 은은해 인기를 끌면서 전화나 e메일을 통한 주문이 늘어나자 이들 부부는 번역일을 소홀히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휜들링씨 부부는 “이번 크리스마스 때 동네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직접 만든 초를 나눠주고 조촐한 파티도 열 계획”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담양=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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