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선물을 한번 받아봤으면 좋겠어요.”
“같이 사는 할머니를 위해 밥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24일 밤부터 25일 오전에 걸쳐 전국 2000여명의 저소득층 가정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원한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몰래’ 배달받았다.
아름다운재단(이사장 박상증)은 이달 초부터 전국 106개 저소득 지역 공부방에 있는 5∼13세 어린이 2093명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물어 한 사람당 5만원 안팎의 선물을 건네주는 ‘몰래몰래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열었다.
‘딱지, 햄버거, 피자, 장난감, 인형….’ 어린이들이 받고 싶은 선물은 평범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인지 겨울 추위를 막을 장갑, 목도리, 외투 등을 바란 어린이도 적지 않았다. “신발이 하나밖에 없어 빨고 나서 채 마르기도 전에 신는 탓에 발 냄새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다”면서 “운동화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사연을 적은 어린이도 있었다.
이 어린이들의 사연은 아름다운재단 웹사이트에 공개됐다.
이를 본 시민과 기업체 임직원 등은 어린이 개개인의 ‘나눔 산타’가 돼 선물을 후원하고 산타클로스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기꺼이 맡았다.
엔씨소프트(대표 김택진)는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눔 산타’가 됐으며 5500여만원을 모금해 재단측에 전달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어린이들에게 단지 희망사항만을 적도록 해 자신들을 위해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재단측은 “공부방별로 자원봉사자들이 선물을 포장하고 카드를 작성해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선물을 전달함으로써 정말 산타클로스가 다녀갔다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동사무소앞 돈보따리 4년째 익명산타 ▼
23일 오전 10시25분경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노송2동 동사무소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동사무소 옆 공중전화 부스 안에 현금과 돼지저금통이 들어 있는 쇼핑백이 있으니 불우이웃을 돕는 데 써 달라”는 내용이었다. 30, 40대로 추정되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황급히 밖으로 나간 동사무소 직원들은 공중전화 부스 안에 세워진 종이쇼핑백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1만원권 현금 500만원과 동전 36만7330원이 가득 찬 돼지저금통이 메모지와 함께 들어 있었다.
“올해는 열심히 일해 다른 해보다 더 (기부)할 수 있어 너무 기쁘답니다. 우리 동만이라도 결식아동이 없었으면 합니다.”
‘얼굴 없는 산타클로스’의 소박한 소망이었다. 지난해 이맘때도 같은 사람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같은 장소에 현금 100만원과 동전 61만2060원이 든 돼지저금통 등을 싼 보따리를 놓고 갔다.
혼자 사는 노인과 저소득층 주민이 많은 중노송2동 동사무소에는 ‘얼굴 없는 천사’들의 선행이 2000년부터 4년째 5번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날 하루 전인 지난해 5월 4일에는 한 독지가가 동사무소 앞 장애인용 도움벨 앞에 ‘불우 어린이를 위해 써 달라’며 현금 100만원을 놓고 갔다.
중노송2동 동사무소 직원들은 “꼬깃꼬깃한 돈다발이나 돼지저금통으로 미뤄 볼 때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 1년 동안 모아 온 돈을 연말에 놓고 가는 것 같다”면서 “이 동네에 살거나 이 동네와 관련 있는 사람의 선행으로 추정될 뿐”이라고 말했다. 동사무소측은 이 성금으로 쌀과 연탄을 구입해 저소득층 가정에 전달하고 있다.
양성룡 중노송2동장은 “귀한 뜻이 헛되지 않도록 의미 있게 성금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전주=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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