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현장 최다출동 서울경찰청 백승언 경감▼
“새해에는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1년 내내 집회와 시위로 얼룩졌던 2003년. 시위현장 최다 출동을 기록한 서울경찰청 기동단 특수기동대 선임중대장 백승언(白承彦·32·사진) 경감의 소망이다.
과격시위를 도맡아 처리하는 특수기동대 선임중대장은 경찰이면 모두 기피하는 자리.
경찰대 11기로 수사계통에 있다가 올해 초 선임중대장에 임명된 그는 올 한 해 250번이 넘는 출동기록을 가지고 있다.
핵폐기장 유치 반대 시위 때문에 전북 부안군에도 20일 정도 가 있었다.
백 경감에게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시위는 11월 9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던 전국노동자대회. 1년여 만에 화염병과 너트와 볼트 새총이 등장한 이 시위에서 중대원 130명 중 50명이 부상했고 그중 8명은 곧바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중상인 상태였다.
백 경감은 “그중 한 명은 쇠파이프로 맞아 얼굴이 찢어졌는데 성형수술을 해도 흉터가 남을 것 같다”며 “병원에 찾아갔을 때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 대원을 보며 눈물을 삼켰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 대원들을 교육하면서 상대가 일반시민인 만큼 친구고 가족이 될 수 있으며 대원들도 사회에 나가면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하지만 돌이 날아오고 쇠파이프에 맞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가장 원초적인 인간으로 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며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시위대와 물리적으로 대치하는 일은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1주일에 2, 3일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어쩌다 귀가하면 반겨주는 아내가 고맙고 아들(6)과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29일에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대회 경비를 맡아 오전에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기동단을 나서던 그는 “모든 집회가 신고한 대로, 법대로만 열리더라도 수천명의 경찰 인력이 민생치안에 투입될 수 있다”며 “과격시위는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개인워크아웃 심사 신용회복委 민경희씨▼
“아버지가 큰 병에 걸리셨어요. 그런데 저는 빚보증을 잘못 서서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아버지를 살려야 하는데 어쩌면 좋나요.”
7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신용회복지원위원회 별관의 상담 창구. 한 직장인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눈물을 글썽거렸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던 민경희씨(32·사진). 신용회복 지원 절차를 설명하고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지만 마음은 개운치가 않다.
민씨는 이 위원회에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사람들을 만나 상담을 하는 선임심사역. 경기 불황이 계속된 올해, 위원회에는 모두 5만1988명이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직접 찾아온 상담자는 무려 23만3000명. 민씨는 이 중 60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상담을 했다.
민씨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올해 2월. 지난해까지 민씨는 은행에서 채권추심 업무를 맡았다. 그때 그는 빚진 사람들의 아픔을 절감해 올해 빚진 사람들의 편에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을 선택했다.
업무가 끝나는 밤. 민씨는 피곤한 몸을 추스르면서 ‘도대체 이 사회에는 왜 이렇게 어려운 사람이 많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상반기만 해도 찾아오는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지만 점점 늘어 이제는 대면상담으로만 하루 30명 넘게 만난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자리마저 잃을지 모른다고 불안해하던 공무원, 흥청망청 신용카드를 그어댄 20대 젊은이, 다짜고짜 눈물부터 흘리며 사연도 말하지 못하던 20대 이혼녀…. 그는 올 한해 사회문제가 됐던 모든 종류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만났다.
자주는 아니지만 간간이 ‘밝은 희망’도 느꼈다. “초기상담을 잘 해줘서 빚도 갚고 월급 압류도 풀렸다. 곧 회사에서 승진도 할 것 같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감사전화가 그가 느끼는 유일한 보람이다.
“어려우신 분들,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마세요. 그리고 내년에는 저를 만나지 않고도 모든 분이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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