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용 여수성심병원 이사장 ‘아름다운 퇴장’

  • 입력 2004년 1월 5일 18시 24분


《“이 병원을 적자에서 흑자로 돌린 것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시민들입니다. 병원을 그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전남 여수성심종합병원을 운영하는 서구의료법인 박순용(朴順龍·61) 이사장이 400억원대에 달하는 이의 법인 모든 재산을 직원들에게 물려준 뒤 퇴장했다.》

박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18일 부인(54)과 함께 의료법인 송년 행사에 참석해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16년 전 부도난 병원을 인수해 갖은 노력 끝에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박 이사장의 열정을 잘 알고 있던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퇴진 선언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박 이사장은 “병원이 3년 전부터 흑자로 돌아서면서부터 물러날 생각을 했다”면서 “이제 경영에서 손을 떼고 병원이 커나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여수성심병원

300병상 규모의 성심종합병원과 간호학원, 어린이집, 산후조리원 등을 운영하는 서구의료법인의 재산은 473억2000만원. 부채 64억원을 제외해도 400억원이 넘는다.

서구의료법인은 박 이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 5명의 이사진을 새로 선임했다. 새 이사장에 류춘식 신경외과 과장이 선임됐다. 병원장과 부원장, 진료부장, 사무국장 등이 이사진에 참여했다.

전남 나주시에서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박 이사장은 가정 형편으로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한 뒤 무작정 상경해 고학으로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야간과 수도공대(홍익대 전신) 전기과를 마쳤다. 전기회사 봉급생활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전기회사와 전기자재공장 등을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으며 평소 꿈꾸어왔던 육영사업을 대신해 부도가 난 성심병원을 인수했다.

그는 “막 인수했을 때 병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영이 엉망이었다”면서 “하지만 병원 가족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친절 경영’으로 흑자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한때 미국에서 의과대학을 다닌 큰아들(30)을 재단 이사로 병원 경영에 참여시킬 생각도 했지만 아들이 ‘의료법인은 아버지 개인의 것이 아니며 내 사업을 하겠다’고 고사해 크게 깨우쳤다”면서 “이제야 사회에 진 빚을 덜게 돼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여수=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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