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형사3단독 황한식(黃漢式)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이날 결심(結審)공판에서 검찰은 “이번 사건은 정경유착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권 피고인에게 돈을 전달하는 과정에 연루된 증인들이 모두 그 같은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권 피고인은 금강산관광사업으로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던 현대측에 200억원이라는 거액을 요구해 기업의 대외경쟁력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며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구형해야 마땅하나 특가법상 알선수재의 법정 최고형이 징역 5년이어서 이같이 구형한다”고 말했다. 현대비자금 15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특가법상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돼 징역 20년이 구형된 바 있다. 박 전 장관의 경우 직접적인 허가권자이지만 권 전 고문은 허가권자가 아니어서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됐다.
200억원의 대가성 여부에 대해 검찰은 “김영완(金榮浣·해외 체류)씨가 자술서에서 ‘정부당국이 현대측에 카지노관광사업권을 허가해 주면 내가 (현대측에서 위임받아) 직접 운영해보려고 정몽헌(鄭夢憲) 전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게 권 전 고문을 소개해 줬다’고 밝혔다”며 “이는 200억원의 대가성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권 전 고문의 비자금을 세탁 관리해온 것으로 검찰이 지목한 인물.
권 전 고문은 30여분간 최후진술을 통해 “검찰의 공소사실과 논거 내용은 참으로 황당하고 생사람을 잡는 것이며 증인들의 허위진술을 토대로 짜 맞춘 것”이라면서 “인생을 정리하는 말년에 왜 내가 거짓말을 하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또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40여년간 정치행로를 함께 걸으며 갖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민주화를 위해 일했다”며 “나를 한 시대의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좋으나 양심도 없는 파렴치범으로 모는 것은 시대의 불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들딸에게서 존경받는 어엿한 아버지로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심장을 도려내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결백을 주장한다”며 “미국에 거주하는 3대독자 아들이 얼마 전 득남했는데 보러가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권 전 고문의 변호인 역시 1시간여에 걸친 최후변론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입증이 부족하고 정몽헌 전 회장,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의 진술도 모두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공소기각이나 무죄판결을 내려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법정에는 민주당 김옥두(金玉斗) 최재승(崔在昇) 이훈평(李訓平) 의원 등 동교동계 의원들이 나와 공판을 지켜봤으며 권 전 고문은 공판 직후 담담한 표정으로 법정을 찾은 지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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