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회장 미국行]검찰 묵인했나 몰랐나

  • 입력 2004년 1월 6일 18시 48분


검찰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 26층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는 가운데 그룹 관계자들이 26층의 출입문을 통제하고 있다. -이훈구기자
검찰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 26층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는 가운데 그룹 관계자들이 26층의 출입문을 통제하고 있다. -이훈구기자
김승연(金升淵) 한화그룹 회장이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 하루 전인 1일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드러나 출국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한화가 정치권에 제공한 대선자금을 밝히기 위한 검찰 수사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6일 김 회장 집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인 검찰은 곧 김 회장 등을 소환할 계획이었으나 김 회장의 출국으로 난감해 하고 있다.

검찰은 김 회장 출국 사실을 6일에서야 파악했다고 설명했지만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기업 총수가 수사팀도 모르는 사이에 출국한 경위를 놓고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다.

우선 검찰이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김 회장이 사실상 검찰의 묵인 아래 출국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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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수사를 앞두고 수사 대상자가 검찰 몰래 출국한 사실이나 검찰이 뒤늦게 이런 사실을 인지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설사 검찰의 묵인이 없었더라도 김 회장의 출국은 허술한 수사의 단면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찰의 비공식 라인을 통해 한화에 대한 수사 움직임이 유출되고 이를 접한 김 회장이 서둘러 출국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부터 한화의 비자금 조성 단서를 포착한 뒤 김 회장을 보좌하던 한화 임직원을 소환해 불법 대선자금 제공 여부에 대해 조사해 왔다.

그러나 한화 관계자들은 “합법적인 정치자금 외에는 모른다”며 ‘모르쇠’로 일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검찰이 김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에 이어 집무실 압수수색이라는 압박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이나 김 회장의 출국으로 수사의 허점을 드러낸 셈.

검찰 관계자는 “대기업 총수의 경우 경제에 미치는 파장 때문에 출국금지를 하더라도 최대한 신중하게 취할 수밖에 없는 고충이 있다”며 “김 회장이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인 만큼 조만간 귀국해 수사에 협조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회장에 대한 조사가 늦어지면 대선자금 수사도 그만큼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한화측은 이날 “김 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미국 연수를 준비해 와 12월 18일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퍼시픽 리서치센터로부터 연수 승인을 받아 출국했을 뿐 검찰수사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화측은 또 “이번 연수는 ‘한미동맹과 비정부기구(NGO)의 역할과 미래’라는 주제로 올해 6월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대기업 총수가 기업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국의 대학에 6개월간 연수를 간 것은 ‘도피성’ 출국이 아니냐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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