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2시반경 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지검 특수2부 사무실에서 대기하던 정 의원은 1998년 경성그룹 비리사건으로 구속됐던 악몽이 떠오른 듯 검찰청에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 1시40분경 서울지법 법정에 맨 먼저 도착한 정 의원은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담담한 목소리로 “다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굿모닝시티 대표 윤창열(尹彰烈·구속)씨와 대우건설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정 의원은 상기된 표정으로 검찰 직원과 수십 명의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법정으로 향했다.
최완주(崔完柱)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된 심사에서 정 의원은 “윤씨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윤씨로부터 어떤 청탁을 받지는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9일 검찰에 자진 출두한 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 의원은 대검청사에서 변호사와 바둑을 두며 담담한 심경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이 자리에서 “대선자금에 관한 총체적인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었던 만큼 누구에게도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처벌도 달게 받을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 박주천(朴柱千) 박명환(朴明煥) 의원과 민주당 이훈평(李訓平) 의원 등은 10일 새벽까지 무더기로 대검 중앙수사부 수사실에서 영장 발부 여부를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박주천 이훈평 의원 등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법원의 영장발부 시간이 늦어지자 소속 당에 관계없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박주천 의원은 9일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혐의를 전혀 인정할 수 없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말을 못 하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명환 의원은 “(검찰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법원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짧게 말한 뒤 법정으로 들어갔다.
검찰의 사전구속영장 청구 직후 이례적으로 국회에 체포동의안 가결을 요청했던 이훈평 의원은 “모래와 설탕을 섞어놔도 개미는 설탕만 먹는다”며 자신을 개미에 비유한 뒤 부당한 돈은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또 “혐의를 부인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혐의가 뭔지도 모른다”며 “나에 대한 영장청구는 구색 갖추기식 수사”라고 말했다.
민주당 박주선(朴柱宣) 의원은 공적자금비리 합동수사반이 있는 서울지검 서부지청에서 영장 발부 여부를 기다렸다.
박 의원은 주변 사람들에게 “검찰이 지난해 5월 나라종금 사건 수사 당시 소환 조사한 뒤 7개월이 넘도록 기소하지 않아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했다. 나에 대한 영장 청구는 특정 정치세력의 인위적 정계 개편과 세력 교체 음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오후 3시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박 의원은 미소 띤 얼굴로 “정정당당하게 사법부의 심판을 받겠다”면서 “검찰의 이번 구속영장 청구는 검찰권의 행사가 아니라 폭력이며 정치적 음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원은 강형주(姜炯周)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심사에서 “나는 실정법상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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