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용 의원 체포영장]끝없는 비리 의혹… 결국 몰락

  • 입력 2004년 1월 14일 18시 57분


‘태권도로 시작해 태권도로 끝난 영욕의 30여년,’

김운용(金雲龍·사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스포츠 대통령’으로까지 불렸던 그의 오늘을 탄생시킨 무대는 태권도였다. 1960년대 외교통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던 그는 대통령 경호실 보좌관 시절이던 71년 40세의 젊은 나이에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으면서 체육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김운용 스캔들 일지
1999년 3월 17일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유치 뇌물 스캔들과 관련해 ‘엄중 경고’ 조치
2002년 2월 28일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김동성 금메달 실격 판정 파문으로 대한체육회장 사퇴
2003년 5월 18일아들 정훈씨(미국명 존 킴), 솔트레이크시티 스캔들과 관련해 불가리아에서 체포됨
2003년 7월 4일국회 평창특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방해와 관련해 김 부위원장 공직사퇴권고안 채택
2003년 7월 31일평창특위, 김 부위원장 징계안 국회 윤리위 제출
2003년 12월 17일정훈씨, 미국측 송환요구 철회로 불가리아에서 풀려남
2004년 1월 9일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및 국기원장 자진 사퇴

5개 국어에 능통하고 특유의 친화력과 화술을 자랑했던 그는 이듬해 국기원장에 취임하고 73년에는 북한 최홍희가 이끄는 국제태권도연맹(ITF)에 맞서는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창설해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접수했다.

천운도 따랐다. 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며 높아진 국가위상은 그가 84년 국제경기단체총연합회(GAISF) 회장, 8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선임돼 국제 스포츠계 거물로 성장하는 배경이 됐다.

IOC에서도 그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89년 라디오·TV 분과위원장에 올라 ‘돈줄’을 거머쥔 그는 한때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위원장의 황태자로 불리며 2인자의 입지를 쌓았다. 2001년 러시아 모스크바 총회에선 위원장 선거까지 출마했고 지난해 7월에는 92년에 이어 두 번째로 부위원장에 당선됐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라고 했던가. 그는 90년대 들어 각종 비리 의혹을 받으면서 검찰과 IOC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김운용 왕국’의 누수를 알린 신호탄은 90년대 말 태권도계의 투서 사건. 단증 발급을 둘러싼 금품 수수 및 공금 유용 소문은 자원봉사자라고 주장해온 그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국제스포츠 무대에서도 99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유치를 둘러싼 뇌물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입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위기를 민주당 전국구 의원 입성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사상 첫 남북 동시입장 성사로 넘긴 그가 결정타를 맞은 것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 쇼트트랙에서 안톤 오노(미국)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이 금메달을 빼앗겼는데도 폐회식에 예정대로 참석하겠다고 했다가 국민의 거센 비난을 받아 대한체육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게 그것이다.

이어 지난해 7월 체코 프라하 IOC총회에서 평창의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방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현재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고 있는 각종 비리는 김 부위원장과 관련된 그동안의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30년 넘게 지속돼온 한국 스포츠의 1인 독재. 이제 그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IOC 위원직 유지될까▼

사법처리가 확실시되는 김운용 IOC 부위원장은 그의 텃밭인 국제스포츠계에서도 축출 압력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명함에 새길 공식 명칭만 30개가 넘는다는 ‘마당발’ 김 부위원장은 9일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와 국기원장직을 내놓았지만 IOC 관련 직책과 9기 연임에 성공한 국제경기단체총연합회(GAISF) 회장직은 여전히 갖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최악의 경우에도 IOC 위원직은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동안 몇몇 IOC 위원이 자국 내에서 내란이나 권력형 부패에 연루돼 사법처리됐지만 이를 근거로 IOC가 제명한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임기는 만 78세가 되는 2009년까지.

그러나 현재 IOC 분위기는 김 부위원장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지젤 데이비스 IOC 대변인은 최근 “자크 로게 위원장이 윤리위원회에 김 부위원장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이미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캔들로 IOC의 엄중경고를 받은 터. 로게 위원장을 비롯한 ‘안티 김운용’ 세력들이 들고 일어나면 사퇴 압력의 수위는 예전보다 훨씬 높을 전망이다.

윤리위는 김 부위원장의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 선임을 둘러싼 배임 수재와 WTF 기금 횡령 비리 등을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동시입장 대가로 북측에 현금을 지급한 것과 2001년 IOC 위원장 선거 때 선거자금을 불법 모금한 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김 부위원장의 입지는 위태로워질 것이 분명하다. 국내문제가 아닌 IOC 관련 사항이기 때문이다.

IOC는 솔트레이크시티 스캔들과 관련해 1999년 스위스 로잔 임시총회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상 처음으로 6명의 IOC 위원을 제명했다. ‘IOC의 명예를 손상시켰을 경우 총회에서 출석위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면 제명할 수 있다’는 규정도 이때 생겼다.

김 부위원장이 IOC 위원직을 잃게 되면 GAISF 회장직도 유지하기 어려우리라는 게 체육계의 분석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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