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뇌물 대목 챙기고 보자”…공무원 수뢰현장

  • 입력 2004년 1월 18일 18시 41분


《“장관이 오든 말든, 감찰을 하든 말든 우린 챙긴다.” 설을 앞두고 공직 사회의 뇌물과 ‘떡값’ 수수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품을 받아 챙기다 적발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암행감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무시할 만큼 ‘간 큰’ 공무원들이 많다는 증거다.》

허성관(許成寬) 행정자치부 장관이 대구시와 경북도를 방문해 국정 상황과 지역 발전에 대한 얘기를 한창 하고 있던 16일 대구와 인접한 경산시청에서는 공무원과 유관업체의 ‘검은 거래’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다.

국무조정실 공직기강 합동점검반이 청사 내에서 업자들로부터 설 ‘떡값’을 받아 챙기는 6, 7급 공무원들을 현장에서 잇달아 적발한 것.


점검반은 이날 오전 11시경 건축과 K씨(43)가 사무실로 찾아온 업체 간부로부터 10만원권 백화점 상품권 10장이 든 봉투를 받는 현장을, 40분 뒤에는 도시과 J모씨(38)가 구내식당에서 역시 1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는 현장을 적발했다.

점심식사 후 오후 2시경에는 산림녹지과 P씨(55)가 사무실에서 골재채취업자로부터 9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모두 3시간 내에 일어난 일이었다.

바로 이날 윤영조(尹永祚) 경산시장은 2002년 6월 지방선거 때 지역 국회의원에게 거액의 공천 헌금을 건넨 혐의로 대구지검에 긴급체포돼 연행됐다.

주민 한모씨(45)는 “시장은 검찰에 끌려가고 직원들은 떡값을 챙기고 이게 무슨 창피냐. 청사 안에서 이렇게 받아 챙기는데 바깥에서는 오죽하겠느냐”며 혀를 찼다.

합동점검반은 또 16일 대전 동구 용전동 한국전력공사 충남지사 K과장의 승용차 트렁크에서 현금 및 수표 1600만원과 함께 이를 넣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빈 봉투를 발견했다. 이 과장의 호주머니 안에는 며칠 전 건설업자로부터 받은 현금 200만원도 들어 있었다.

점검반은 같은 날 강원 원주지방국토관리청 산하 정선국도유지건설사무소에서 건설업자가 소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뒤따라가 최모 사무관(46)이 200만원을 받는 현장을 덮쳤다.

지난해 11월에는 전북도 농업기반과 6급 직원이 도청 구내식당에서 도 농업기반공사 간부로부터 470만원을 받다가 총리실 암행감찰반에 발각되기도 했다. 당시는 전북도가 정부합동감사를 받던 중이었다.

설을 앞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도 문제.

암행감찰이 강화되면서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책상 정리 잘하고 바짝 엎드려 있는 게 최고”라는 말이 돌고 있다.

허 장관은 대구시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공직 기강도 좋지만 간부들 책상까지 뒤지는 것은 심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듣고 “복무 감찰이 공무원의 인격까지 모독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국민 세금으로 먹고 사는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안하고 무사안일한 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모두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하는 황모씨(48·대구 달서구)는 “관공서에 인사를 해야 하는 일 때문에 명절 때만 되면 부담스럽다”며 “인사 못지않게 복지부동하고 있는 공무원들을 움직여 업무가 제때 처리되도록 하는 것도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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