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한쪽 구석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물건 배달을 맡은 ‘나눔천사’들에게 김치 치약 비누 등이 든 ‘나눔보따리’, 쌀 한 포대, 약도를 나눠주고 있었다. 봉사자들은 “김치가 쏟아지면 받는 분들이 마음 상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며 전달 방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 정찬군과 6학년생 딸 시원양, 부인 이현주씨(43)와 함께 온 회사원 강복권씨(44)는 “배달차량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왔는데 막상 와보니 사람이 많아 놀랐다”며 “모두들 표정이 밝아 보기만 해도 즐겁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자선단체인 ‘아름다운 가게’(공동대표 손숙)가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등 1000여명의 어려운 이웃에게 생필품을 전달하는 ‘나눔보따리 전달 행사’.
물품 배달을 위해 자원한 300여명의 나눔천사들은 쏟아지는 눈 속에서 길을 헤매면서도 주변 곳곳의 이웃을 찾아 따뜻한 정을 나눴다.
강씨 가족이 담당한 곳은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혼자 사는 한 할머니의 집.
“처음이라서 서먹하기도 하고, 받는 분에 대한 정보도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잘못하면 그쪽에서 불편해할지도 모르고…. 그냥 물건만 드리고 바로 나오려고요.”
출발 때부터 약간 긴장된 표정이던 강씨 가족은 한참을 헤맨 끝에 신대방동 한 골목 반지하층에 있는 정모 할머니(75)의 집에 도착했다. 부인 이씨는 “심부름 왔다”며 나눔보따리 계란 과자 등을 집안으로 운반했다.
어색함도 잠시, 강씨 가족들은 정찬군과 시원양을 “친손자녀 같다”며 반기는 정 할머니와 금세 친해졌다. 정 할머니는 “명절이 되면 혼자 제사를 지내느라 쓸쓸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니 고마워”라며 정찬군의 손을 꼭 잡았다.
강씨는 “막상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정겹고 뿌듯했다”며 “서울에 계신 부모님도 자주 찾아뵈어야겠다”고 말했다.
시원양은 “할머니가 생각보다 건강한 분이셔서 다행”이라며 “앞으로도 주변 이웃들을 생각하면서 생활하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준비한 ‘아름다운 가게’의 이현정 간사는 “지난해 11월 열린 벼룩시장에서 마련한 비용과 기업들의 기부로 물품들을 준비했다”며 “불우한 사람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게 아니라 이웃과 정을 함께 나누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이날 회사 동료들과 함께 6군데의 가정에 나눔보따리를 전달한 이기주씨(34)는 “나눔보따리를 받아들고 뭐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던 30대 아주머니가 기억에 남는다”며 “쉬는 날 눈 맞으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흐뭇하다”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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