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포커스 피플/등대지기 33년 허근 소장

  • 입력 2004년 1월 18일 21시 38분


“봄이 되면 등대지기라는 두꺼운 옷을 벗고 사회에 나가야 하는데…. 막상 떠날 생각을 하니 섭섭하고 걱정도 되네요.”

정년을 2개월 앞 둔 인천 팔미도등대의 허근(許根·60)소장은 요즘 33년간의 등대지기 생활을 자주 떠올린다.

파도와 갈매기를 친구 삼아 등명기(燈明機)를 밝혀 온 그의 삶은 고독과 그리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기쁨이 더욱 크다.

젊었을 때는 하루에도 서너 번 씩 “이 짓, 빨리 그만 둬야지”란 마음을 먹었다.

영화 ‘빠삐용’에 나오는 주인공과 똑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들 때는 “이 직업을 왜 택했을 까”라고 후회도 했었다.

그러나 막상 등대지기 생활을 접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지난해 12월 22일 새 등대 점등과 함께 100년간의 소임을 다한 옛 팔미도등대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그는 정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등대지기 생활 중 13년을 팔미도등대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오래 머무는 곳이 마음의 고향이 듯 팔미도는 저에게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새 등대에서 조금 더 일했으면 하는 욕심도 있어요.”

그는 1971년 11월 해양수산부의 전신인 교통부 해운국에 근무하던 친지의 소개로 등대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등대와 인연을 맺었다.

처음 발령 받은 곳은 인천 옹진군 부도등대. 이듬해 2월 결혼한 그는 부인과 함께 신혼생활을 난방도 잘 되지 않는 등대 숙소에서 시작했다.

지금이야 태양열 발전기로 등대는 물론 숙소의 난방과 전기를 해결하지만 그 때는 땔감도 직접 구해야 했다.

부도등대에서 첫째와 둘째아이를 본 그는 선미도등대를 거쳐 다시 팔미도등대로 배치 받으면서 교육문제로 부인과 아이들을 뭍으로 보냈다.

등대지기 생활은 동요 ‘등대지기’에 나오는 가사처럼 한적하고 낭만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와 반대다. 항상 바쁘고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기 때문.

일몰과 일출 때 등명기를 켜고 끄는 일 외에 태양열발전기 관리와 팔미도 주위에 설치된 9개의 등부표 불이 정상으로 작동하는지 수시로 관찰해야 한다.

또 온도 풍속 풍향 등 기상정보를 하루 5회씩 인천기상대에 통보해야 한다.

그는 새 등대를 짓는 2년 여 동안 담배가 크게 늘었다.

현장소장이나 감리사도 아니었지만 100년을 바라보고 지어야 하는 등대가 조금이라도 잘못 지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새 등대 신축현장에서 현장 노동자와 함께 생활했다.

그는 “등대지기는 책임감과 인내력 외에 성실함이 없으면 맡은 소임을 다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요즘은 밤잠이 없어져 새벽 근무를 자청하고 있는 그는 영원한 등대지기이다.

팔미도=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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